-과학의 눈과 존재의 몸... 쇠라와 남농 허건의 점이 만나는 지점
-빛의 점묘와 흙의 토점, 두 문명에서 피어난 ‘지각의 미학’
쇠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1886, 207.6×308cm,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미술관 소장.
근대미술은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본다’에서 ‘어떻게 느끼고 인식하는가’로 옮겨온 지각의 역사다.
이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르누아르와 오지호가 빛과 살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몸과 감각을 해방시켰다면, 조르주 쇠라와 남농 허건은 그보다 더 깊은 차원, 즉 ‘보는 행위’ 자체의 본질을 탐구했다. 인상주의가 눈의 감각을 실험했다면, 이 두 사람은 그 위에 서구의 합리적 시선과 한국적 생명의 감응을 더했다.
쇠라는 과학의 눈으로, 허건은 존재의 몸으로 세계를 인식했다. 프랑스의 빛과 조선의 흙, 서구의 분석과 한국의 감응이라는 서로 다른 문명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보는 것은 무엇이며, 세계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이 물음은 모더니즘 회화에서 ‘지각의 전환’을 상징하는 두 축이 된다.
조르주 쇠라-빛의 점, 지각의 질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대표작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는 회화를 실험의 장으로 바꾼 혁명적인 작품이다. 그는 화면 위에 수천, 수만 개의 색점을 찍어 관람자의 눈 속에서 색이 시각적으로 섞이도록 했다. 회화의 완성은 화가의 붓끝이 아닌 관람자의 망막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었다.
쇠라의 점은 단순한 물질적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지각의 원자(atom of perception)’, 즉 빛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인식의 입자였다.
그가 이런 방법을 갑자기 떠올린 것은 아니다. 60점에 달하는 습작이 보여주듯, 쇠라는 프랑스 화학자 셰브렐(Michel-Eugène Chevreul)의 『색의 대비와 조화의 원리』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보색 대비의 원리를 회화로 옮긴 그는, 물감을 ‘빛의 실험도구’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화면 속 인물들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지 않는다. 고립된 채 존재하면서도 수평과 수직의 리듬으로 조율된다. 전경의 앉은 인물, 중경의 산책자, 후경의 강물과 나무들은 질서의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빛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흐르고, 감정의 표현보다 지각의 논리가 앞선다.
쇠라의 회화는 감각의 기록이 아니라 지각이 작동하는 구조다. 인상주의가 “눈, 그러나 어떤 눈인가”를 외쳤다면, 쇠라는 보는 행위와 인식의 원리를 하나로 묶었다. 그의 점 하나하나는 세계의 해체가 아니라, 지각이 세계를 세우는 과정이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근대적 인식론을 시각화한 선언문이다. 19세기 후반 회화의 상징이 된 이 작품은 점의 미학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다.
남농 허건-흙의 점, 존재의 감응
남농 허건, <목포교외>, 1942, 137×171cm,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농 허건(1908–1987)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화로 사유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 〈목포교외〉(1942)는 조선 산수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근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작이다.
그의 화면은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이어지는 산세와 밭고랑은 시간의 흐름처럼 이어지고, 미세한 점과 선들이 촘촘히 엮여 살아 있는 표면을 만든다.
그 점들은 흙의 질감, 바람의 흔들림, 생명의 진동을 담고 있다.
비스듬히 누운 야산에 초가 몇 채, 밭을 가르는 고랑, 머리에 짐을 인 여인, 나무와 울타리까지—그 어떤 부분도 점의 호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토점화(土點畫)의 미학이 한적한 농가 풍경 속에 구현된 것이다.
허건의 점은 쇠라의 원색적 대비와 다르다. 갈색, 황토색, 회색이 서로 스며들며 대립보다는 순환과 호흡의 관계를 만든다. 그의 색은 빛을 쪼개지 않고 자연의 기운을 흡수한다.
〈목포교외〉에는 흙냄새와 바람의 속도, 인간의 노동이 함께 녹아 있다. 그의 점은 계산이 아니라 몸의 리듬, 붓의 호흡이다. 점과 점은 맥박처럼 이어져 화면을 이루며, 수백만 개의 점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처럼 진동한다.
허건의 ‘토점주의(土點主義)’는 일제강점기의 시각적 규범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었다. 그의 점은 빛을 해체하지 않고 존재를 응집시킨다. 자연의 호흡을 흡수하고 화면 위에서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인다.
프랑스의 점묘가 분석과 분해의 미학이라면, 허건의 토점화는 응집과 생명의 미학이다. 그의 점은 흙의 입자가 아니라 존재의 집을 쌓아 올리는 에너지다.
〈목포교외〉는 허건이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호흡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지금의 큐레이터에게도 식민지 시대의 경계와 미학적 과제를 던진다.
쇠라가 인상주의 이후 지각의 주체를 세웠다면, 허건은 실경산수 속에서 존재의 감응을 복원했다.
점의 철학-과학의 점과 존재의 점
쇠라와 허건은 시대도, 문화도 달랐지만 ‘점’이라는 표현 방식에서 같은 철학적 문맥을 공유했다.
“생각하는 나, 고로 존재한다”는 근대 철학의 명제가 두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다.
쇠라는 이성의 리듬으로, 허건은 생명의 호흡으로 점을 다뤘다. 쇠라는 빛을 분해해 지각의 구조를 탐구했고, 허건은 대지의 호흡을 응축해 생명을 그려냈다.
하나는 인식의 언어, 다른 하나는 한국적 현상학의 언어였다.
두 사람의 점은 서로 다른 세계를 비추는 두 개의 철학적 거울이다. 모더니즘 미학 속에서 그들의 점은 과학과 존재, 분석과 감응이라는 두 축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존재한다.
오늘 우리가 다시 쇠라와 허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의 사유’에 있다.
근대의 눈에서 존재의 몸으로
르누아르와 오지호가 몸의 감각을 해방시켰다면, 쇠라와 허건은 인식의 근원을 탐구했다.
쇠라는 빛의 점으로 지각의 질서를 세웠고, 허건은 흙의 점으로 존재의 감응을 복원했다.
하나는 세계를 분석하고, 다른 하나는 세계와 함께 숨 쉰다.
쇠라의 점은 과학의 눈으로 대답하고, 허건의 점은 자연의 몸으로 응답한다.
빛의 원자와 흙의 점, 두 세계의 언어는 다르지만 그 사이에는 예술의 떨림이 흐른다.
미술은 여전히 그 두 점 사이에서 숨 쉬며, 그 떨림 속에서 살아 있는 철학이 된다.
출처: https://www.thepress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6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