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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미학 :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과 도발의 미학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7
작성자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원문링크 https://www.newsflix.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81

-형이상학에서 초현실, 그리고 한국적 무의식으로


[뉴스플릭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 예술이 꿈을 되찾다.


1924년 프랑스 파리.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은 예술사의 궤도를 바꾸었다. 그는 다다이즘의 파괴적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언어를 발견했다. 브르통의 의도는 반(反)이성이나 반(反)전통 아니라, 억압된 꿈의 세계를 예술의 중심으로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이성의 독재로부터 꿈을 해방시키라.” 그의 이 선언문은 철학적 전복의 명문이자 예술의 혁명문이었다. 브르통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댔다. 꿈과 무의식, 우연과 연상, 자동기술이 아방가르드의 창작 원리가 되었다. 예술은 더 이상 눈앞의 세계를 재현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사유하는 철학적 행위로 전개됐다. 이로써 ‘현실의 재현’이 아닌 ‘현실의 전복’을 예술의 목적이 되었다. 아방가르드의 이러한 도발성이 유럽의 데 키리코와 한국의 김종하의 작품에서 경험한다. 


데 키리코-사랑의 노래 1914 캔버스에 유채 73 x 59.1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소장)


형이상학적 회화 ― 데 키리코의 ‘정지된 사유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초현실주의 이전, 이미 그 문을 연 예언자였다. 현재는 모마(MoMA)에 소장된 그의 》사랑의 노래(The Song of Love)《(1914)는 고전적 석고두상, 빨강의 고무장갑 그리고 멀리 달리는 기차를 한 화면에 병치한 작품이다. 이 장면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석고두상은 고전의 이념을, 고무장갑은 근대의 일상성을, 기차는 시간과 운동을 상징한다. 이 낯선 병치는 관객의 이성적 판단을 교란하고, 사물들은 현실의 논리를 잃은 채 사유의 기호로 전환된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형이상학적 회화(pittura metafisica)라 명명한 이유다. 

데 키리코의 철학은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데 키리코는 ‘모든 사물의 영원한 귀환’이라는 니체의 시간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했고, 존재의 불안과 공허를 정지된 도시의 장면으로 진술했다. 그의 그림에는 인간이 없다. 대신 그림자, 벽, 아치형 통로, 시계탑만이 존재한다. 이 정지된 공간에서 관객은 ‘불안의 형이상학’을 경험한다. 그의 회화는 미래파의 속도나 폭발의 미학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는 철학의 무대였다.


브르통은 데 키리코를 ‘꿈의 철학자’라 불렀다. 그의 사유적 정적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살바도르 달리는 키리코의 ‘불안한 정적’에서 꿈의 이미지를, 르네 마그리트는 ‘사물의 이중성’에서 현실과 이미지의 간극을 탐구했다. 데 키리코의 회화는 이렇듯 예술이 철학으로 진입하는 문턱이자, ‘침묵의 도발’로서 초현실주의의 정신적 원류였다.


김종하-색장갑 1957 캔버스에 유채 81.9 x115.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종하의 초현실성 ― 식민의 무의식과 부재의 미학 반 백 년 후 지구의 반대편에서 김종하(1918–2011)는 》색장갑《(1957) 속에서 한국 근대사의 무의식을 응축시켰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화면 속 장갑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부재한 손의 흔적이며 사라진 행위의 잔여물이다. 그 장갑은 ‘부재의 기호’이자 ‘식민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비워진 장갑은 식민과 전쟁, 분단의 시대를 통과한 한 예술가의 내면적 기록이며, 그 침묵은 한국 근대의 상처와 결여를 품은 무의식의 표상이다.

1950년대 한국 미술계에 잔재한 식민주의와 달리 김종하는 서구 초현실주의의 형식을 재수용하거나 모방하지 않았다. 그는 ‘현실의 잔여를 붙잡는 초현실’을 추구했다. 그의 》색장갑《은 말할 수 없는 시대의 언어이자 침묵의 회화였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무의식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가시화했다. 김종하에게 있어 회화는 현실의 파편 속에서 탄생한 윤리적 초현실주의라 할 수 있다.

김종하의 장갑은 데 키리코의 석고두상과 닮았고, 원근법의 왜곡도 닮았다. 두 사물 모두 부재한 존재를 대신하지만, 각각 의미는 다르다. 키리코의 두상은 형이상학적 존재의 불안을 상징하고, 김종하의 장갑은 역사적 상처의 윤리적 침묵을 상징한다. 이렇게 한국미술계에 초현실주의가 탄생했으며, 한국미술이 전후 침묵을 통한 도발이라는 아방가르드 미학에 동참한다.

도발의 두 얼굴― 형이상학과 현실의 균열

데 키리코와 김종하는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활동했지만, 둘 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렸다. 키리코는 존재의 불안을, 김종하는 침묵의 과거사를 시각화했다. 데 키리코의 도발이 형이상학적 사유의 전복이라면, 김종하의 도발은 역사적 침묵의 증언이다. 그들의 회화는 모두 ‘보이지 않음의 미학’을 진술했다. 이렇게 예술은 여전히 현실의 구조를 낯설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사유의 아방가르드―네오초현실주의로의 확장

오늘날 아방가르드는 침묵 속에서 세계의 균열을 감각하는 사유의 미학이다. 》사랑의 노래《가 현실의 논리를 교란시킨 철학의 언어였다면, 》색장갑《은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지 못한 시대의 시각적 상징이다. 오늘날의 네오 초현실주의(Neo-Surrealism)는 디지털 이미지와 인공지능, 가상현실의 기술을 통해 무의식의 형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과거의 초현실주의가 꿈의 기록이었다면, 오늘의 초현실주의는 기억의 시뮬라크르다.예술은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세계를 열어졌힌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이 초현실주의를 낳았고, 김종하의 침묵이 한국적 초현실주의를 열었다면, 오늘의 예술은 가상 속에서 새로운 무의식의 이미지를 탐색한다. 아방가르드적 도발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무대가, 현실에서 가상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초현실주의에서 네오초현실주의로 이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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