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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방가르드미학의 혁신성' -구성주의와 네오구성주의 사이의 틈새 읽기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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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은 더 깊숙이 들어가 아방가르드운동이 전전과 전후가 밀고 당기는 혁신성에 주목한다. 앙드레 브레통이 선언한 꿈이 데 키리코와 김종하의 작품에서 무의식으로 형상화된 반면에, 구성주의는 전전과 전후로 이어 달리면서 공간의 혁신성이 새롭게 부상한다.


초현실주의와 달리 구성주의는 재현을 포기했다. 혁명기 러시아에서 태동한 구성주의는 색, 선, 기하학적 형태로 대상을 대체했고, 재현 대신에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구성의 원리로 삼았다. 더 이상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혁신이 아방가르드미학에 자리한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이 혁신의 출발을 알렸다. 원근과 환영이 제거된 그의 작품이 재현을 거부하면서 전위적 급진성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로 확산되었다. 이 칼럼에서는 타틀린과 엔서니 카로, 나움 가보와 이건용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아방가르드미학의 혁신성 속으로 들어간다. 


세워진 혁명과 내려놓은 전위 : 타틀린과 앤서니 카로



좌측=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 1885-1953),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1919–20, 러시아 미술대학에서 조교와 타틀린이 모델 옆에서 찍은 사진,1920. 우측=앤서니 카로(Amthony Caro: 1924-2w013), [어느 이른 아침(Early One Morning)], 1962, 289.6 x 619.8 x335.3cm, 강철과 알루미늄, 빨강, 런던 테이트 모던 소장.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 1885-1953)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1919–20),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운동의 예술과 사회의 긴장을 극대화한 사례다. 이 작품은 혁명이 작동하는 시간의 구조이며, 예술이 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는 급진적 믿음의 결과다.


철과 유리로 제작된 모델은 상승하는 나선형 구조로 미학을 정치의 속도로 끌어 올린다. 회의실, 엘리베이터, 계단, 통신 장치가 결합된 이 거대한 구조물은 예술을 미술관 밖, 즉 사회 설계의 현장으로 옮겨 놓았다. 여기서 아방가르드는 형식의 새로움이 아니라 형식의 책임으로 독해된다. 타틀린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400m 규모로 제안했었으나, 경제적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미실현 된 프로젝트는 오늘날까지도 건축과 디자인 등 아방가르드 미학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반면 전후 서구 조각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태도와 마주한다.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1924-2013)의 <어느 이른 아침(Early One Morning)>(1962)은 타틀린의 티원형의 수직적 상승을 수평적으로 독해한다. 영국작가는 철과 알루미늄과 색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조각의 좌대를 폐기했다. 


자율적 공간을 형성하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던 시선이 아니라 관람자의 신체와 같이 바닥 평면 위에서 동일한 높이다. 바닥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낮고 길게 펼쳐진 철재가 붉은 색을 입어 정지된 조형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을 담았다. 제목이 말하듯이 태양이 떠오르는 수평적 빛과 하루가 시작되기 직전의 잠재적 에너지를 연상케 한다. 그러니까 형태의 서가가 아니다. 시간의 분위기마저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시선의 변화도 다양 하다.


카로는 여기서 타틀린의 혁신적인 공간을 소환했으면서도 사회는 호출하지 않았다. 그의 공간 구성은 정치적 명령이 아니라 지각의 사건이다. 타틀린이 상승하는 조형물로 러시아 혁명을 밀어붙였다면, 카로는 세워진 덩어리에서 벗어나 공간 위에 펼쳐진 구성으로 본다가 아니라 지나감을 현시했다. 전전의 시각중심이 이렇게 신체 지각 중심으로 전환한다. 서 있는 형상이나 세운 구조물이 아니라 세계와 나란히 마주하는 구조를 몸으로 경험하는 질서라 탄생했다. 



카로는 혁명의 언어를 내려놓고 형식의 자율성으로 이동했지만. <어느 이른 아침>은 우리에게 공간구조가 이제부터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혁신은 스스로의 조건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방가르드의 운명은 변질되진 않는다. 타틀린에게 전위는 미학과 정치의 합일이었고, 카로에게 전위는 정치가 제거된 형식의 정제일 뿐이다. 하나는 사회를 세우려 했고, 다른 하나는 조각의 조건을 자유롭게 했다. 이렇듯 아방가르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혁신의 척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공간을 긋는 선, 몸이 남긴 구조 : 나움 가보와 이건용



좌측: 나움 가보(Naum Gabo: 1890-1977), [공간 속의 선형 구조 Nr. 2], 1949, 셀룰로이드, 투명재료, 42.8 x 42.2 x 42.2cm, 런던 Wadington Galleries.소장.우측: 이건용(1942), [신체 드로잉 76-2], 1976, 8개의 작품으로 구성, 페널에 마커펜, 사진.


아방가르드 미학의 핵심 질문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세계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라는 질문이 그렇다.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를 상징하는 나움 가보(Naum Gabo: 1890-1977)와 한국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이건용(1942)은 시대와 문화가 각기 다르면서도 동일한 문제의식, 즉 공간인식에 동석한다.


1920-40년대의 <공간 속의 선형 구조>와 <키네틱 구조물>은 조각의 중량과 볼륨을 제거한 나움 가보의 대표적인 연작에 속한다. 가보는 조각의 덩어리를 제거하고 나일론 실과 금속 선, 투명 재료로 공간의 윤곽만을 긋는다. 실체는 최소화고, 공간은 최대화다. 여기서 선은 물질이 아니라 좌표로 공간을 인식하는 장치다.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띠라 다양한 연작이다. 작품 속 빈 공간이 중심이다. 따라서 관람자는 형태가 아니라 공간의 구조를 경험한다. 진동에 따라 움직이는 선에 따라 빈 공간의 가변적 형태가 변신한다. 선의 좌우와 상하로 움직이는 리듬이 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이렇듯 가보의 작품에서 선은 공간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공간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움직임과 진동은 조각에 시간을 첨가하면서, 아방가르드를 인식의 차원으로 밀어 올린다.


나움 가보가 미적 혁신이란 형태가 아니라 공간을 긋는 구조라는 사실을 인식한 반면에, 그의 1920-40년대 연작은 세계가 작동하는 모델로서 아방가르드의 핵심, 즉 지각의 재조직을 정제된 방식으로 실현한 사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 드로잉>과 <공간과 신체>연작은 이건용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1960-70년대 아방가르드의 공간적 혁신을 몸의 경험으로 끌어 올렸다. 가보의 선이 미리 계획된 구조인 반면에, 이건용은 신체가 공간과 마주하며 남긴 흔적에 집중한다. 팔의 길이, 회전의 한계, 균형의 실패 그 자체가 구조가 된다. 가보가 공간을 추상화했다면, 이건용은 공간과 신체를 기록한 셈이다. 손이 아니라 몸전체가 주체다. 몸이 움직인 궤적 자체가 선이 된다. 벽의 높이, 팔의 길이, 관절의 회전 범위, 몸이 닿을 수 없는 영역까지 다다른다. 진부하지 않다. 뒤돌아 서기, 보지 않고 팔 뻗기 등 신체와 공간의 마주침이 다채롭다. 가보의 움직이는 공간이 물질로 나타난 반면에, 이건용의 움직임은 몸 그 자체다. 따라서 이 건용에게 있어 결과는 기록이며, 작품은 과정 그 자체다. 신체가 공간을 측정하여 남긴 궤적과 선으로 공간의 구조를 드러낸 방법이 다르다. 


이건용에게 신체는 도구가 아니라 주체성의 기본 단위인 반면에, <신체 드로잉>에서 <공간과 신체>로 전개된 그의 연작은 아방가르드의 혁신개념을 한국미술에 정착시킨 사례로 남는다.


아방가르드 미학의 관점에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위를 밀어붙인다.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는 비개인적 형식의 순수성에 있다. 주체는 사라지고, 구조만 남는다. 반면 한국적 아방가르드는 주체의 조건을 드러낸다. 둘 다 형상을 제거하지만, 이건용은 몸을 제거하지 않는다. 방향의 차이는 있다. 그들 모두에게 공간이 존재와 세계가 맞닿는 한계선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러시아와 한국의 작업들은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던진다. 가보에게 조각은 공간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고, 이건용에게 작업은 몸이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아방가르드미학은 이렇게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이 세계와 만나는 조건을 드러내는 일이다.


구성주의에서 네오 구성주의로 이어지는 이 틈새에서, 아방가르드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아방가르드가 구성주의에서 네오구성주의로 이동하면서 혁명의 언어를 내려놓았지만, 형식이 세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혁신성은 역점을 달리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아방가르드미학은 서구와 한국에서도 더 이상 세계를 바꾸겠다고 외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흔드는 질문, 즉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으로 지속된다.


출처 : 뉴스플릭스(NewsFlix)(https://www.newsflix.co.kr)


[칼럼]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수

jineui@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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