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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방가르드미학 : 고갱과 천경자의 작품에서 혁신성을 경험하다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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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플릭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  보편적 질서 이후 : 전위적 혁신성


앞선 칼럼에서 우리는 데 스틸과 네오-데 스틸의 가구 미학을 통해 전위가 어떻게 형식의 질서를 극대화했는지를 살펴보았다. 20∼21세기를 관통한 아방가르드 미학은 수직과 수평, 기하학적 단순성, 질료의 구조적 명료성으로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보편적 질서’는 하나의 미적 규범으로 일상화되었다.


실천적 삶이라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이념은 실패로 귀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네오-와 포스트-아방가르드의 변주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오늘날 가구 미학은 아름다움(美)과 쓰임(用)의 경계마저 해체하며 기능과 조형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재정립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미적 보편성이 삶 속으로 스며들어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었다면, 전위적 혁신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만약 사라졌다면, ‘네오’와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수사적 장식에 불과한가.


이 물음은 우리의 시선을 19세기 말과 20세기 후반으로 되돌린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명권에 속한 두 작가, 고갱과 천경자의 작품을 통해, 전위적 혁신성의 근원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자 한다.


폴 고갱 <너는 언제 결혼하니?> :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원시성


이미지 = 고갱, 1892, 캔버스에 유채, 101 × 77 cm, 카타르 박물관청(Qatar Museums), 도하.


파리 인상주의 화단과 결별한 고갱은 타히티로 떠남으로써 전통적 시각 체계에 균열을 가했다. 1892년 제작된 <너는 언제 결혼하니?(Nafea Faa Ipoipo?>는 그 전환의 시작점에 위치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르네상스 이후 지속되어 온 단일 원근법의 공간 질서를 해체한다. 명암에 의한 점진적 모델링에 평면화된 색면과 또렷한 윤곽선이 대체한다. 공간은 깊이로 확장되지 않고 병치된다. 전경의 녹색·황색·청색이 층을 이루며 화면을 조직하고, 색은 대상이 아니라 화면 공간을 구조화한다.


전경에는 두 명의 타히티 여성이 관객과 마주한다. 후경 왼편에는 서구인 인물이 배치된다. 전경은 보색 대비로 강조되고, 후경은 상대적으로 밝고 평면적으로 처리된다. 이 병치는 장면의 구성을 넘어 문명과 원시, 식민성과 토착성의 긴장을 병치한 전략이다. 왼쪽 귀에 티아라 꽃을 꽂은 인물은 사회적 기호를 암시하고, 뒤편의 여성은 서구식 드레스를 입고 있다. 두 인물의 복식은 이미 혼합된 근대의 현실을 드러낸다. 낙원은 순수한 외부가 아니라, 식민 질서 속에 편입되었음을 암시한다. 화면 하단의 현지어 표기는 타히티를 하나의 언어적 공간으로 호출하는 동시에 서구적 시선 안에서 재구성된 타자의 언어이기도 하다.


고갱의 혁신은 이중적이다. 그는 재현의 규칙을 전복하며 시각 체계를 변형시켰지만, <너는 언제 결혼하니?>의 원시성은 식민적 욕망과 긴장을 공유한다. 원시성은 문명 비판의 전략이다. 타자의 이미지를 통해 성립하는 모순도 지닌다.


<너는 언제 결혼하니?>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형식의 급진성과 윤리적 긴장이 공존한다. 관람자의 선택은 자유지만, 분명한 것은 아방가르드가 여기서 새로운 사조나 작품개념의 새로움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통을 거부하는 행위와 새로운 질서의 주체성에 대한 물음이 오로지 관조자의 몫이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 네오 아방가르드의 원초성


이미지 = 천경자, 1977, 캔버스에 유채, 162 × 130 cm,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위를 실험한다. 고갱이 외부로의 이동을 통해 전통을 흔들었다면, 천경자는 내면을 신화화함으로써 시선의 구조를 전환한다. ‘전설’과 ‘페이지’라는 제목은 삶을 사건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 작품은 초상화이면서 동시에 자전적 기록이다. 개인의 기억이 신화적 차원으로 승화하면서, 원초성의 층이 두터워진다.


화면 중앙의 여성-자아는 정면을 응시한다. 이 응시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성 자리다. 관람자는 바라보는 위치에서 응시의 권력으로 수용된다. 감정도 절제되어 있다. 과잉이나 노출되지 않고 응축적이다. 눈과 표정이 침묵 속에서 긴장을 유지한다.


머리 위의 뱀, 가슴의 장미, 어두운 배경, 모두 상징적이다. 뱀은 금기와 욕망, 장미는 아름다움과 상처의 이중성이고, 배경은 심리적 공간이다. 천경자의 원초성은 외부의 낙원을 상상하지 않는 대신에 슬픔을 신화로 전환한다.


강렬한 원색, 또렷한 윤곽선, 정면 응시, 반복되는 상징적 모티프는 이국적 취향의 소비와 거리가 멀다. 작품제목이 말하듯 자전적이다. 곧 화면 속 인물은 타자나 사회적 욕망이 아니라 “22페이지”의 자신의 “슬픈” 신화다.


고갱의 혁신성과 대비된다. 고갱이 타자의 원시성을 통해 근대를 비판했다면, 천경자는 자신의 원초성을 통해 주체의 위치를 재정립한다. 전자는 서구의 전통적인 회화적 체계의 전복이고, 후자는 개화기 여성의 주체성의 전환이다.


상징주의에서 네오 상징주의로


고갱과 천경자는 모두 상징을 사용한다. 각각의 방향과 방법은 다르다. 고갱의 상징주의는 자연과 타자를 통해 초월을 모색했다면, 천경자의 네오 상징주의는 기억과 자아를 통해 내면의 질서를 구성했다. 


아방가르드적 혁신성은 형식의 파괴 이전에 시민사회의 자유인으로서, 근대가 동반한 식민주의적 시선과 주체의 위기를 재배치하는 행위다. 형식은 그 재배치의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고갱은 떠남으로써 전위를 수행했다. 그는 문명 바깥을 상상하며 전통적 근대의 규칙을  흔들었다. <너는 언제 결혼하니?>는 문명과 원시의 충돌을 병치함으로써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원시성을 시각화한다. 그 원시성은 문명 비판의 전략이면서도, 동시에 식민적 욕망의 긴장을 내포한다.


반면 천경자는 응시함으로써 전위를 실천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기억과 신화를 중첩시키며 네오 아방가르드의 원초성을 형상화한다. 그녀는 외부의 낙원을 상상하지 않는다. 내면의 슬픔과 욕망을 상징의 체계로 전환한다. 응시는 대상화의 구조를 되돌리고, 주체의 위치를 재정립한다.


19세기 말 <너는 언제 결혼하니?>가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원시성을 부여한다면, 20세기중후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네오 아방가르드에 원초성을 더한다. 아방가르드 미학은 보편적 질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지향성이 이동했을 뿐이다. 형식의 혁신에서 윤리적 자각으로, 외부의 상징에서 내면의 상징으로로 말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에서 네오 아방가르드로 이어지는 궤적 속에서, 원시성에서 원초성으로의 긴장이 곧 혁신성의 자리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묻는다. 예술은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고 누가 바라보는가를 그리고 바로 그 물음이, 역사적 전위 전략을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해석하는 계기가 된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jineui@hanmail.com

출처 : 뉴스플릭스(NewsFlix)(https://www.newsfli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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