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에서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까지
-오토 딕스의 〈전쟁〉(1929–1932)...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의 목격 윤리
-네오 라우흐의 〈아버지〉(2007)...1970~80년대 이후 독일 네오 신즉물주의적 흐름
-강요배의 〈학살〉과 〈뼈노래〉...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과 침묵의 형식
바실리 칸딘스키의 <무제>(1910) : 내적 필연성
앞선 칼럼에서 우리는 큐비즘 이후 추상이 회화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립했는지 살펴보았다. 대상과 서사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그림은 형식의 질서만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그리고 김환기의 작업을 통해 확인했다. 이 성취는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형식이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확보한 이후, 회화는 역사와 폭력 앞에서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이는 미학적 문제가 사회적 격변과 함께 제기된 윤리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 응답으로,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미적 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같은 시기 표현주의가 내면의 감정을 전면화했다면, 신즉물주의는 주관적 과잉을 거부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실을 냉정하게 응시했다. 형식 이후 회화가 세계와 다시 마주 서는 방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단절되지 않는다. 그것은 1970~80년대 독일 네오 신즉물주의적 흐름을 거쳐, 20세기 후반 이후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으로 변형되며 지속된다. 이는 하나의 양식 계보라기보다, 형식과 윤리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의 변주다
Otto Dix, der Krieg, 1932, 목판에 템페라와 유화, 406 x 264cm, Neue Maeister, Dresden
오토 딕스의 〈전쟁〉(1929–1932)...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의 목격 윤리
20세기 초, 오토 딕스(Otto Dix, 1891–1969)는 다시 질문한다. 추상이 형식의 자율성을 통해 세계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면, 자율성 이후 회화는 어떻게 다시 세계 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경험한 제1차 세계대전을 감정적으로 재현하거나 호소하지 않는다. <전쟁 der Krieg> 등 그의 작품은 미술의 형식 자체를 하나의 윤리적 장치로 전환한다. 특히 종교적 제단화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초월성을 삭제한다. 초월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이 물음이 화면을 지배한다.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의 핵심은 참혹한 역사적 사건을 의미로 봉합하려는 기능을 차단하는 형식적 결단에 있다. 동시대 표현주의가 내면의 절규를 폭발시켰다면, 딕스는 그 절규를 냉정하게 고정한다. 그의 화면은 관람자가 동일시하거나 도피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둔다. 이것이 신즉물주의의 윤리적 태도다.
네오 라우흐, 아버지 Vater, 2007, 2007 캔버스에 유채
네오 라우흐의 〈아버지(Vater)〉(2007)...1970~80년대 이후 독일 네오 신즉물주의적 흐름
딕스가 참전자의 위치에서 “나는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다면, 네오 라우흐(Neo Rauch, 1960–)는 한 세대 이후의 자리에서 묻는다. 그는 전쟁의 직접적 목격자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와 통독 이후 독일이라는 이중의 역사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1970~8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네오 신즉물주의적 흐름은 1920년대 신즉물주의의 형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윤리적 태도를 변형한다. 세계를 미화하지 않고, 고통을 서사로 환원하지 않으며, 관람자의 감정적 동일시를 유도하지 않는 태도. 라우흐는 바로 그 지점을 계승한다.
〈아버지(Vater)〉에서 시간은 겹치고 세대는 뒤틀린다. 화면은 불투명하다. 이 불투명성은 모호함이 아니라, 의미가 너무 빠르게 확정되는 것을 유예하는 장치다. 딕스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목격의 윤리’를 확립했다면, 라우흐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불투명성의 윤리’를 재구성한다.
강요배, 학살, 1992, 캔버스에 유채
강요배, 뼈노래, 1990년대, 캔버스에 유채 『동백꽃 지다』 연작
강요배의 〈학살〉과 〈뼈노래〉...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과 침묵의 형식
오토 딕스가 전쟁의 잔해를 정면으로 고정했고, 네오 라우흐가 역사적 기억의 충돌을 불투명하게 남겨두었다면, 강요배는 제주 4·3 연작 <동백꽃 지다>를 통해 말해질 수 없음 그 자체를 형식으로 응수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을 말할 수 있다. 이는 특정 양식의 명칭이라기보다, 목격과 기억 이후 남겨진 침묵을 어떻게 형식으로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다.
〈학살〉은 정치적 폭력이 어떻게 체계로 작동했는가를 구조적으로 고정한다. 〈뼈노래〉는 폭력의 잔여만을 남긴다. 설명조차 거부하는 두개골은 말할 수 없음 그 자체다. 발성할 수 없는 것이 발성하는 역설. 침묵이 형식이 되는 순간이다.
딕스가 “나는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다면, 라우흐는 “우리는 왜 단정할 수 없는가”를 묻고, 강요배는 “말할 수 없음은 어떻게 형식이 되는가”를 묻는다.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에서 시작된 이 윤리적 태도는 1970~80년대 독일 네오 신즉물주의를 거쳐, 오늘날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으로 변형된다.
신즉물주의–네오 신즉물주의–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
1920년대 독일 신즉물주의, 1970~80년대 독일 네오 신즉물주의, 그리고 이후의 포스트 신즉물주의적 경향은 양식의 단순한 변천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가 역사 앞에서 취해 온 윤리적 태도의 변형이다.
목격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침묵으로 회화는 점점 더 절제되지만, 윤리적 태도는 더욱 단단해진다.
추상 이후 회화적 형식에는 자율성에 더해 응시의 조건이 첨가된다. 바라보기 위한 거리이되, 도망치지 않기 위한 거리. 고통을 미학화하지 않으면서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의미로 봉합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해체하지 않는 긴장.
근대가 “나는 거기에 있었다”고 증언했다면, 오늘의 회화는 “나는 그것을 쉽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멈춤의 자리에서, 독일과 한국 현대미술의 윤리는 서로를 비춘다.
김승호 동아대교수, 칼럼니스트
https://www.thepress1.com//news/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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