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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승호 교수의 현대미술론 6. 세잔에서 피카소, 그리고 구본웅의 초상화에서 근대 주체의 변화를 경험하다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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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1899, 100 × 81cm, 캔버스에 유채, 프티 팔레 미술관, 파리

 앞선 연재에서 우리는 세잔과 오지호의 풍경화, 마티스와 이중섭의 춤을 통해 근대 이후 미술에서 ‘인식의 대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풍경은 더 이상 자연의 재현이 아니었고, 춤은 신체가 세계와 맺는 리듬적 관계의 문제였다. 이번 컬럼에서는 인식의 대상이 ‘인물’, 그중에서도 초상화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의 보다 근본적인 지각 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인물화는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 가운데 하나다. 우리만 보더라도 반구대 암각화에서 삼국시대 고분벽화, 백제 금동대향로에 이르기까지 인간 형상은 줄곧 제작되어 왔다. 인류사와 동행해 온 만큼 유형 역시 다양하다. 아시아에서는 초상화, 고사인물화, 도석인물화, 산수인물화 등으로 분화되었고, 서구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와 조각, 그리스의 이상적 인물상, 로마의 실존 인물 초상, 중세의 상징적 인물 형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본주의가 자리 잡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치며,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미술 안에서 가능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처럼 오랜 시간 인간의 형상을 사유해 온 장르는 드물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물화, 특히 초상화에 결정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 그릴 수 없다”는 예술가의 자각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과 맞물리며 근대적 주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초상화는 인간의 내면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르로 기능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전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근대 이후의 초상화는 더 이상 얼굴을 ‘보여주는’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얼굴이 더 이상 하나로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전환된다. 세잔, 피카소, 구본웅의 초상화는 이 변화의 세 국면을 각각 선명하게 보여준다.

폴 세잔 ― 지각이 구조를 획득하려는 마지막 시도
폴 세잔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1899)은 파리의 전설적인 화상 볼라르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어두운 갈색과 보랏빛이 지배하는 화면 속에서 볼라르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구조가 화면을 지배하며, 인물의 얼굴은 작업실 창문의 수평선과 거의 일치한다. 이 교차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형성하듯 인물을 공간 속에 고정시킨다.

이 작품은 종종 ‘미완성’으로 언급된다. 화면의 일부가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볼라르가 그 이유를 묻자 세잔은 “추측으로 칠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완벽주의라기보다 세잔이 지각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그는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를 제거한 채 얼굴을 색면들의 긴장 관계로 구성한다. 이마와 코, 턱은 서로 다른 색의 균형 속에서 겨우 얼굴을 이룬다.

이 초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얼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이다. 구와 원기둥, 원뿔로 세계를 파악하려 했던 세잔의 기하학적 결단은 이 초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얼굴은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지각 행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 얼굴은 안정되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불안하다. 세잔의 볼라르는 근대 주체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균열되기 직전의 마지막 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파블로 피카소,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1910, 92 × 65cm, 캔버스에 유채, 푸시킨 미술관, 모스크바

파블로 피카소 ― 초상화가 더 이상 얼굴이 될 수 없을 때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소장된 피카소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1910)과 마주하면 같은 모델임에도 세잔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얼굴을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 관람자는 인물을 인식하기보다 인식하려는 자신의 시도가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화면 속 인물의 머리, 이마, 눈, 코, 입은 선과 면으로 분해되어 있고, 얼굴과 상체는 어두운 배경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르네상스 이래 유지되던 단일 시점은 해체되고, 정면과 측면, 상부의 시점이 동시에 중첩된다. 제한된 갈색과 회색 계열의 색채는 인물의 개성을 지우고 형태 분석에 집중하게 만든다. 세잔이 색의 대비로 인식의 구조를 세웠다면, 피카소에게 색은 구조를 해체하는 도구다. 여기서 초상화는 더 이상 인물의 정체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대신 “왜 우리는 하나의 시점으로만 세계를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데카르트적 ‘생각하는 나’는 더 이상 얼굴을 통제하지 못한다. 얼굴은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여러 지각 행위가 충돌하는 평면적 공간이 된다. 피카소는 인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인간이 하나의 시점으로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근대적 환상을 제거한다.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년경, 50 × 62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구본웅 ― 해체된 인식을 살아내야 했던 얼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년경)은 오랫동안 자화상으로 오해되었으나, 실제 모델은 시인 이상이다. 짧은 챙의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파이프를 문 이 얼굴은 초상화이면서 동시에 초상화가 아니다. 눈, 코, 입은 남아 있지만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두터운 마티에르와 격렬한 붓질, 긁힘과 번짐은 피부를 묘사하기보다 침식과 부식의 과정을 드러낸다. 얼굴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표면 위에서 겨우 남아 있는 흔적처럼 보인다. 이 초상은 기억이나 재현, 정체성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지지 않은 고통을 해석하지 않은 채 의미화 이전의 상태로 보존한다.

구본웅은 입체주의의 어휘를 수용했지만 피카소의 분석적 입체주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의 얼굴은 분해되었으되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는다. 눈은 여전히 눈이고 얼굴은 여전히 얼굴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더 이상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형식으로 고정한다. 식민지 근대라는 조건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는 선언은 존재를 보장하지 못했다. 이 초상에 남는 것은 봉합되지 않는 주체의 실존적·현상학적 균열이다.

초상화 이후의 초상 ― 세 얼굴의 연속
이 세 작품은 단순한 영향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인식이 단계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연속이다. 세잔의 얼굴은 지각이 구조를 얻으려는 얼굴이고, 피카소의 얼굴은 그 구조가 해체되는 얼굴이며, 구본웅의 얼굴은 해체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얼굴이다. 이 이동은 미술사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다.

20세기 초상화는 더 이상 인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초상화는 주체가 세계에 나타날 수 있었던 조건, 그리고 그 조건이 붕괴되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초상화란 얼굴을 그리는 장르가 아니라, 얼굴이 더 이상 하나로 성립할 수 없게 된 시대를 기록하는 형식이라고. 이 질문 위에서 현대미술의 초상화는 여전히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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