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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승호 교수의 현대미술론 9. 세계가 흔들릴 때 회화는 무엇을 남기는가 ― 표현주의 이후: 존재와 역사 그리고 기억의 형상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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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세계와 마주한 인간... 뭉크·키퍼·손상기가 남긴 존재와 기억의 회화

-절규에서 폐허의 기억까지 ... 표현주의가 그려낸 인간 존재의 역사적 풍경


세계가 흔들릴 때 인간은 불안을 경험한다. 그리고 어떤 화가들은 그 흔들림을 화면 속에 남긴다.

앞선 칼럼에서 우리는 형식 이후 회화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살펴보았다. 오토 딕스의 <전쟁>은 전장의 참혹한 파괴를 증언하는 회화를 보여주었고, 네오 라우흐와 강요배의 작업은 그 이후에도 기억과 잔여가 화면 속에 남을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돌아온다. 세계가 흔들릴 때 인간은 그 경험을 어떻게 형상으로 남기는가?

이 질문은 20세기 초 표현주의(Expressionismus)에서 시작되어 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us)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표현주의는 감정을 과장하는 미술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경험하는 존재의 불안과 긴장을 형상으로 드러내는 회화적 태도다.

뭉크의 회화에서 인간은 세계 앞에서 절규하고, 키퍼의 회화에서 인간은 역사 속 폐허와 마주하며, 손상기의 회화에서 인간은 겨우 남겨진 존재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Edvard Munch, <절규>, 1893, 종이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91×73.5cm,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세계의 불안 ― 에드바르 뭉크

1893년에 제작된 <절규>는 표현주의 미술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얼굴을 움켜쥔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인물이 다리 위에 서 있고, 뒤쪽에는 두 인물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표정만이 아니다.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불안한 풍경이다. 붉게 물든 하늘은 파동처럼 흔들리고 바다와 대지는 물결치듯 뒤틀려 있다. 직선이어야 할 다리와 난간마저 기울어져 화면 전체가 긴장 속에 빠져든다. 자연은 더 이상 안정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압도하는 불안한 세계로 변한다.

뭉크의 <절규>에서 중요한 점은 절규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자연 자체라는 사실이다.그가 일기에서 말했듯이 그는 “자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으며, 화면 속 인물은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기보다 세계의 진동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절규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존재적 불안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그에게불안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존재의 심연 앞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뭉크의 흔들리는 풍경과 불안에 잠긴 인물은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Angst), 즉 세계 전체가 갑자기 낯설게 경험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절규>는 한 인간의 비명이 아니라 세계의 존재론적 불안을 인간의 신체를 통해 드러낸 표현주의적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Anselm Kiefer, <마가레테>, 1981,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에멀션, 밀짚, 280×380cm.,사치 컬렉션.

역사적 기억 ― 안젤름 키퍼

20세기 후반 등장한 신표현주의는 표현주의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한다. 개인의 감정이나 존재의 불안을 넘어 역사적 기억이 회화의 중심에 등장한다.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다.

1981년 작품 <마가레테>는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화면에는 황금빛 밀짚이 두껍게 덮여 있으며 그 표면은 마치 불타버린 들판처럼 보인다.

이 밀짚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화면 위에 두툼하게 부착된 물질이다. 키퍼의 회화에서 화면은 더 이상 평면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 축적된 장소가 된다.

금빛 밀짚은 독일 문화의 낭만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역사 속 폭력의 흔적을 환기한다. 키퍼의 회화는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머무는 물질적 공간을 만든다.

키퍼의 <마가레테>는 과거를 서술하는 역사화가 아니라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세계 속에 남아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존재론적 풍경이다. 키퍼의 회화에서 화면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과 시간이 침전된 장소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하이데거가 말한 '역사성(Geschichtlichkeit)'—인간 존재가 언제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키퍼의 회화가 역사 속에 남겨진 기억의 무게를 드러낸다면,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인간 존재의 고독을 풍경 속에 남긴 작가가 있다.



손상기, <풍경(무제)>, 1980년대,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녹슨 못과 비어 있는 길이 등장하는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고독이 드러난다.

존재의 고독 ― 손상기

바로 손상기다. 손상기의 <풍경(무제)>은 안정된 형태로 정리되지 않는다. 산비탈을 따라 겹겹이 쌓인 집들은 붉은 기운 속에서 흔들리듯 나타나고, 중앙의 길은 비어 있는 채 먼 곳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화면 한쪽에는 녹슨 못이 박힌 구조물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는 분명한 사건도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 앞에 서면 묘한정적이 흐르며, 마치 누군가 오래전에 이 길을 지나갔고 그 흔적만이 풍경 속에 남아 있는 듯한 감각이 생긴다. 특히 화면 속 못은 사소한 사물이지만 단순한 도구나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

이러한 풍경은 하이데거가 말한 던져짐(Geworfenheit)이라는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하이데거에게 인간 존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세계 속에 이미 던져진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특정한 역사와 장소, 그리고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하며,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한다.

손상기의 화면에서도 인간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어 있는 길과 낡은 구조물, 그리고 녹슨 못과 같은 사물들은 인간이 지나간 자리와 시간의 흔적을 풍경 속에 남긴다. 이 때문에 그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나 마을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이미 던져진 세계의 조건을 드러내는 장소로 읽힌다.

결국 이 그림에서 풍경은 사람이 사라진 배경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존재의 공간이다. 손상기의 회화는 인간을 직접 그리지 않으면서도, 인간 존재가 세계 속에서 살아온 흔적과 고독을 풍경 속에 조용히 남겨둔다.


표현주의적 태도

표현주의는 감정의 표현을 넘어, 세계의 균열 속에서 인간 존재와 역사적 기억이 남긴 흔적을 형상으로 드러내는 회화적 태도이다. 

뭉크, 키퍼, 손상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뭉크는 세계의 불안을 흔들리는 풍경으로 드러냈고, 키퍼는 역사적 기억을 물질의 층위 속에서 호출했으며, 손상기는 그 긴장을 고독한 풍경 속에 남겼다.

표현주의적 형상성은 일정한 시대의 고정된 미술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균열 속에서 인간 존재가 경험하는 긴장을 형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회화적 태도다. 세계가 흔들릴 때 회화는 침묵하지 않는다. 회화는 그 흔들림을 기억의 형상으로 남긴다.

현대 회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그 존재를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는가.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예술은 세계의 균열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그 균열 속에서 인간 존재가 남긴 흔적을 기억의 형상으로 남길 수는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표현주의는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 존재의 긴장을 드러내는 예술의 태도가 된다.

세계의 균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회화는 그 균열 속에서 인간 존재가 남긴 기억의 흔적을 형상으로 남긴다. 바로 이것이 표현주의적 형상회화가 지금도 계속되는 이유일 것이다. 



김승호교수 (동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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