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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방가르드미학의 혁신성 - 데 스틸 이후 가구미학이 어떻게 사유가 되었는가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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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술의 혁신은 캔버스 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자의 형태와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 사물로서의 의자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하나의 미학적 사건이 되었고, 공간과 몸 그리고 존재를 사유하는 조형 언어로 변했다.


앞선 칼럼에서 우리는 데 스틸과 네오-데 스틸로 이어진 가구 미학을 살펴보았다. 게리트 리트벨트의 <레드 블루 체어>는 가구를 장식적 대상에서 기하학적 구조로 환원한 작품이었다. 수직과 수평, 그리고 기본 색채로 구성된 이 의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조형적 질서를 보여주었다.


데 스틸이 가구를 기하학적 구조로 환원했다면 이후 바우하우스와 네오-바우하우스로 이어지는 가구는 공예품의 영역을 넘어 건축과 공간을 구성하는 구조적 요소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마르셀 브로이어가 있었다. 이후 이러한 구조적 실험은 이임스 부부에 이르러 인간의 몸과 감각의 차원으로 확장되며 네오-바우하우스 가구미학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올린다. 한편 한국의 최병훈의 작업은 가구를 다시 물질과 존재를 사유하는 문제로 환원시킨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세 작가의 작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마주해 보고자 한다. 의자는 어디까지 사유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아방가르드 미학의 혁신성은 우리의 경험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이제 그 물음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Marcel Breuer, Wassily Chair (Model B3), 1925, chrome-plated tubular steel and canvas, 73.7 × 79.5 × 68.6 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구조의 혁신 : 브로이어(Marcel Breuer: 1902–1981)의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1925)는 현대 가구 디자인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하고 이후 가구 공방의 책임자를 맡았던 그는 자전거 프레임의 구조에서 착안해 튜블러 스틸을 가구 재료로 도입했다. 그 결과 목재 덩어리로 구성된 전통적 안락의자의 형식에서 벗어나 금속 파이프와 캔버스 또는 가죽만으로 이루어진 선형 구조의 의자가 탄생했다. <바실리 의자>는 오늘날 Museum of Modern Art(MoMA), Centre Pompidou 등 주요 현대미술관에 소장될 만큼 가구미학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의자의 이름은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바실리 칸딘스키가 즐겨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질량의 해체다. 전통적 의자가 재료의 부피와 두께를 통해 안정감을 형성했다면, <바실리 의자>는 선들의 긴장 관계만으로 구조를 유지한다. 의자는 더 이상 공간을 무겁게 점유하는 물체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구조적 장치가 된다.


브로이어의 의자는 내부가 비어 있다. 이 비어 있음은 의자를 가볍게 만들 뿐 아니라 공간과 가구의 경계마저 흐트러뜨린다. 따라서 사용자는 물질이라는 덩어리 위에 몸을 얹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 자신의 신체를 맡긴다. 이때 앉는 행위는 단순한 사용을 넘어 공간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체험하는 행위로 변한다.


또한 <바실리 의자>는 장식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가구 장식의 개념 자체를 뒤흔들었다. 아름다움은 외부에서 덧붙여진 장식이 아니라 구조의 명료성과 선의 긴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금속 파이프의 곡선과 직선은 최소한의 재료로 의자의 전체 구조를 유지하며 동시에 하나의 추상적 선 드로잉처럼 보인다. 이는 마치 칸딘스키의 추상적 선 드로잉이 삼차원 공간 속에서 실현된 것과도 같다. 벽에 걸린 회화가 아니라 실내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조형적 선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실리 의자>의 혁신성은 새로운 가구를 만든 것에만 있지 않다. 브로이어는 의자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아방가르드미학에 가구혁신을 이룩한 선구자이다.



Charles & Ray Eames, LCW (Lounge Chair Wood), 1946, molded plywood, 63.5 × 57.2 × 64.8 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신체의 혁신 : 이임스 부부의 <LCW Chair>


브로이어가 의자의 구조를 혁신했다면, 이임스 부부(Charles Eames: 1907–1978 / Ray Eames: 1912–1988)는 그 구조를 몸의 경험으로 확장했다. <목재로 만든 라운지 의자(LCW Chair)>(1945–46)는 성형 합판 기술을 이용해 인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좌판과 등받이를 갖는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의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이 작품의 조형적 특징은 곡선의 기능화에 있다. 곡선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신체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구조적 장치다. 따라서 조형과 기능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형태 속에서 결합된다. 말 그대로 혁신이 아닐 수 없다.


합판이라는 산업 재료는 성형 과정을 통해 인간의 몸을 감싸는 곡면으로 변형된다. 딱딱한 재료가 오히려 부드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기술은 차가운 생산 논리가 아니라 신체 감각을 조직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러한 혁신은 현대적 삶이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낮고 가벼운 구조는 직립적인 자세보다 이완된 자세를 유도하며 생활양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임스 부부는 친밀한 신체 경험을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목재로 만든 라운지 의자(LCW Chair)>는 엄숙한 가구의 질서를 해체한 작품이다.


그들은 새로운 의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몸이 공간과 가구를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가구미학의 혁신을 실현했다.



Cho Byung Hoon, Afterimage of Beginning (Stone Bench series), 2010s, stone and stainless steel, installation at the National Museum of Qatar, Doha


-존재의 혁신 : 최병훈의 <시원의 잔상 – 스톤 벤치>


최병훈(1952)은 가구를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의 작업은 돌과 금속을 결합한 형태로 제작되며 기능적 가구이면서 동시에 공공 조각적 오브제로 존재한다. 카타르 국립미술관 외부 공간에 설치된 그의 <시원의 잔상 – 스톤 벤치> 연작은 자연석 위에 금속 구조를 결합한 작품으로, 가구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실험이다.


이 벤치는 자연석의 비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앉을 수 있는 좌석 구조를 세심하게 마련하고 있다. 거친 돌의 표면과 매끈한 금속이 대비를 이루며 자연과 인간, 시간과 제작 행위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가구라는 기능적 범주를 넘어 공간 속에서 자연의 물질성과 인간의 구조가 만나는 절제된 미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관람객은 벤치에 앉을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조각적 풍경으로 경험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장 누벨이 설계한 카타르 국립미술관의 사막 장미 형태 건축과 조형적으로 조응한다. 건축의 기하학적 구조와 자연석의 거친 질감이 만나면서 자연과 건축, 물질과 공간의 관계를 사유의 차원으로 이끈다.


돌의 표면에 남아 있는 거친 결과 그 위에 놓인 벤치의 구조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자연의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연의 비정형성과 인간의 질서가 긴장 속에서 공존하면서 가구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 위에 놓인다.


<시원의 잔상>이라는 제목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 명칭은 시작이 이미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 벤치는 바로 그 시간의 층위를 물질 속에 드러내는 조형적 사유라 할 수 있다.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가 가구를 구조의 문제로 바꾸고 이임스 부부의 <LCW Chair>가 그것을 신체 경험의 차원으로 확장했다면, 최병훈의 <Stone Bench>는 가구를 다시 물질과 존재를 사유하는 차원으로 되돌려 놓는다.


-의자는 하나의 철학이 될 수 있는가


이 세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대 가구미학의 중요한 이동을 경험했다.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바우하우스)는 가구를 구조의 혁신으로 바꾸었고, 이임스 부부의 <LCW Chair>(네오-바우하우스)는 그것을 신체 경험의 혁신으로 확장했다. 최병훈의 <Stone Bench>(포스트-바우하우스)는 가구를 존재와 명상의 사유로 전환한다. 아방가르드 미학에서 혁신성은 새로움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사용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이다.


우리는 흔히 가구를 생활용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가구는 물건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사건이 되었다. 데 스틸은 가구를 기하학적 구조로 환원했고, 브로이어는 그것을 산업 기술 속에서 재구성했으며, 이임스 부부는 인간의 몸을 중심에 놓았다. 그리고 최병훈은 가구를 자연과 물질을 사유하는 조형적 풍경으로 확장했다.


20세기에서 21세기 초반을 관통해 온 아방가르드미학의 혁신성은 결국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의자는 더 이상 단순히 앉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의 구조이며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철학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방가르드는 때로 캔버스 위에서 시작되지만, 우리가 앉는 의자의 형태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결국 의자는 우리가 세계 속에 어떻게 몸을 두고 살아가는지를 묻는 하나의 철학적 질문이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jineui@hanmail.com

출처 : 뉴스플릭스(NewsFlix)(https://www.newsfli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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