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기능·전통
우리는 의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앉을 것을 생각하고, 탁자를 보면 그 위에 무엇인가를 올려놓을 것을 생각한다. 사물은 언제나 그 기능을 통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다. 특히 가구는 인간의 몸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사물이다. 의자는 몸을 받아들이고, 탁자는 생활의 행위를 지탱하며, 소반은 음식을 담는 동시에 한 시대의 생활방식을 품는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단지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상의 사물에서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아방가르드의 역사를 새로운 형태의 발명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아방가르드의 보다 근본적인 혁신은 사물 자체의 물성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도 변기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사물을 기존의 기능과 맥락에서 분리함으로써 그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사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달라진 것이다.
이 문제는 회화나 조각보다 오히려 공예와 가구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가구는 본래부터 삶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벽에 걸려 있는 그림과 달리 우리는 의자에 앉고, 탁자를 사용하고, 그릇에 음식을 담는다. 따라서 가구에서 예술과 삶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일상적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페터 뷔르거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핵심을 예술과 삶의 분리를 해체하려는 시도에서 찾았다면, 현대 가구의 혁신 역시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바우하우스 이후 1960년대의 베르너 팬톤은 새로운 산업재료를 통해 가구의 형태와 제작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1980년대의 론 아라드는 이미 존재하는 산업사회의 사물을 재조합함으로써 기능과 예술의 경계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하지훈은 전통 소반을 현대적 재료로 다시 번역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이 세 작가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 속하지만 ‘재료에서 기능으로, 그리고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이라는 흐름을 형성한다.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 1926–1998), [팬톤 체어(Panton Chair)], 1967, 성형 플라스틱, Vitra, 83.2 × 44.5 × 48.3cm, LA County Museum of Art.
■ 재료의 혁신 ― 베르너 팬톤의 <팬톤 체어>
덴마크의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 1926–1998)이 구상한 <팬톤 체어(Panton Chair)>는 20세기 가구디자인에서 가장 익숙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 익숙해진 그 형태가 처음 등장했던 1960년대 초기로 돌아가 보면, 이 의자가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새롭게 실감할 수 있다.
팬톤은 1950년대 후반부터 하나의 재료로 이루어진 캔틸레버 의자를 구상했다. 1960년경 초기 모델이 만들어졌고, 1963년부터 비트라(Vitra)와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의 실험과 시제품 제작 끝에 1967년 소규모 모델이 생산되었고, 이듬해 본격적인 양산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작품 연도는 일반적으로 1960/1967로 병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디자인뮤지엄 덴마크 역시 1960년의 프로토타입과 1967~1968년의 생산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팬톤 체어>의 혁신은 먼저 형태에서 발견된다. 전통적인 의자는 다리와 좌판, 등받이라는 서로 다른 부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목재 가구에서 이러한 구조는 거의 필연적이었다. 각각의 부재를 제작하고 그것을 결구하거나 접합하여 하나의 의자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팬톤의 의자는 구분이 없다. 바닥에서 시작한 곡면이 좌판을 지나 등받이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S자 형태로 올라간다. 다리와 좌판, 등받이 사이의 구분은 사라지고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재료는 물론 플라스틱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재료만이 혁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료가 형태의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무였다면 절단하고 접합해야 했을 구조가 플라스틱에서는 하나의 연속적인 표면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재료가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형태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 점에서 <팬톤 체어>는 냉전기 네오 아방가르드가 보여준 미래주의적 감각과 깊이 연결된다. 1960년대는 우주개발과 과학기술, 석유화학산업과 대량생산이 일상의 시각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던 시대였다. 플라스틱은 단순한 값싼 대체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상징하는 물질이 되었다. 따라서 팬톤의 혁신은 새로운 모양의 의자를 만든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의자를 만드는 규칙을 바꾸었다. 재료가 달라지자 구조가 달라졌고, 구조가 달라지자 형태가 달라졌으며, 형태가 달라지면서 우리가 의자라고 생각했던 이미지 자체가 변화했다.

론 아라드(Ron Arad, 1951– ), [로버 체어(Rover Chair)], 1981, 강관, 가죽, 주철 Kee Klamp 연결부, 80 × 61 × 91.4cm, 런던 One Off Ltd. 제작, MoMA.
■ 기능의 전환 ― 론 아라드의 <로버 체어>
팬톤 이후 약 20년이 지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산업사회는 더 많은 상품을 생산했고, 더 많은 사물을 소비했으며, 그만큼 더 많은 물건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예술가에게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사물을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물을 어떻게 다시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대두되었다.
론 아라드(Ron Arad, 1951–)의 <로버 체어(Rover Chair)>(1981)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1981년 아라드는 폐차장을 찾아가 로버 자동차의 가죽 좌석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강관과 주철 클램프(Kee Klamp) 연결부로 만든 구조에 결합했다. 런던의 One Off Ltd.가 제작한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라드가 처음부터 새로운 의자를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동차라는 다른 기계 속에 존재하던 좌석을 발견한 것이다.
자동차 안에서 운전자나 승객의 몸을 받아들이던 좌석은 폐차장에 버려지는 순간 기능을 잃는다. 그러나 아라드는 그 좌석을 새로운 강관 구조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다시 의자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아라드는 훗날 이 작품을 만들면서 피카소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결합해 만든 <황소 머리>를 떠올렸다고 직접 밝혔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아방가르드의 혁신에 남긴 유산이 존재한다. 아라드는 뒤샹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뒤샹이 일상적 사물의 기능을 중지시키고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제도적 맥락 속으로 이동시켰다면, 아라드는 기능을 잃은 사물에 다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다. 자동차 좌석은 더 이상 자동차의 일부가 아니지만, 여전히 인간의 몸을 받아들인다. 기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한 것이다.
폐차장의 좌석이 디자인 미술관의 작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물질적 실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관계’다. 산업폐기물이 가구가 되고, 가구가 다시 예술작품이 된다.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로버 체어>에서 새로운 형태의 발명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발명에 있다.
하지훈, [반 클리어(BAN CLEAR] 연작, 폴리카보네이트
■ 전통의 혁신 ― 하지훈의 <반 클리어>
한국의 가구디자이너 하지훈(1972-)에게서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그에게 이미 존재하는 것은 산업사회의 폐기물이 아니라 전통이다. 하지훈이 지속적으로 주목해온 소반은 한국인의 생활과 가장 가까웠던 가구다. 소반은 한 사람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낮은 상이며, 한국의 좌식생활과 독상문화, 지역별 목공기술과 조형감각이 축적된 생활도구였다. 그러나 주거환경이 입식으로 변화하면서 소반은 점차 일상에서 멀어졌다.
오늘날 전통적인 사물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박물관에 박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현대인의 생활에 맞춘 형태로 변형되어야 하는가? 하지훈의 <BAN CLEAR>는 이 질문에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답한다. 형태를 버리지 않고 재료를 바꾸는 것이다. 그는 전통 소반의 형태와 구조를 유지하면서 목재 대신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한다.
하지훈의 작품을 바라보면 묘한 시간적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형태는 오래되었지만 물질은 새롭다. 분명 한국의 전통 소반인데, 우리가 알고 있던 소반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나무의 불투명하고 따뜻한 표면 대신 빛을 통과시키는 반투명한 표면이 나타난다. 과거의 형식이 마치 현재의 물질 속에서 다시 출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훈은 <반 클리어>의 반투명성을 통해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치 유령처럼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전통 목가구와 다르다. 전통 소반은 표면 뒤에 감춰져 있던 결합구조가 여기에서 반투명한 재료를 통해 외부로 드러난다. 하지훈은 이렇듯 전통의 외형만 현대적으로 장식한 것이 아니라, 전통의 내부를 가시화한다. 이 지점에서 앞선 베르너 팬톤과 흥미로운 대조가 형성된다. 팬톤이 목재 가구의 결구와 조립방식을 없애고 플라스틱의 일체형 구조를 만들어냈다면, 하지훈은 오히려 현대적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전통 목가구의 결합구조를 다시 드러낸다.
종합하면, 팬톤에게 플라스틱이 전통적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면, 하지훈에게 폴리카보네이트는 전통적 구조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매개체가 된다. 서구 아방가르드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왔다면, 하지훈의 혁신성은 단절이 아니라 번역인 셈이다.
■ 새로운 사물에서 새로운 관계로
재료에서 기능으로, 그리고 기능에서 전통으로 이어지는 세 작품의 궤적은 아방가르드의 혁신 개념이 어떻게 이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베르너 팬톤의 <팬톤 체어>는 재료를 바꾸어 형태의 규칙을 해방시켰다. 반면 론 아라드의 <로버 체어>는 기능을 이동시켜 사물의 맥락과 관계를 재편했다. 하지훈은 <반 클리어>로 전통을 현대적 물질로 번역하여 과거를 현재의 시간 속으로 되살려냈다.
이 세 가지 질문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그것은 사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아방가르드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모든 새로운 것은 언젠가 낡아지기 마련이다. 팬톤의 의자도, 아라드의 업사이클링도, 하지훈의 소반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변화할 것이다.
21세기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새로운 물건의 창조가 아닐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새로운 관계이다. 팬톤은 인간과 재료의 관계를, 아라드는 인간과 산업폐기물의 관계를, 하지훈은 현재와 전통의 관계를 바꾸었다.
이들이 변화시킨 것은 의자와 소반이라는 사물만이 아니라, 그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이다. 건축이 인간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간의 조건을 변화시킨다면, 가구는 그 공간 안에서 인간의 몸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삶의 내부를 구성한다.
<팬톤 체어>에서 의자는 새로운 물질이 되었고, <로버 체어>에서 의자는 새로운 관계가 되었으며, <반 클리어>에서 소반은 새로운 시간이 되었다. 재료는 형태를 해방시키고, 기능은 관계를 변화시키며, 전통은 현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오늘날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던 사물을 다시 보이게 하는 데 있다. 새로운 사물을 만드는 것에서, 사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으로의 전환. 바로 이 지점에서 공예와 가구는 단순한 생활의 도구를 넘어 하나의 심오한 미학적 질문이 된다.
우리는 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나아가 사물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바로 여기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아방가르드 미학의 진정한 혁신성이 있다.
김승호 동아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