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가 거대한 현대미술이 되다.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 [룬트강] 예술축제 현장,퍼포먼스 수상작 및 전시장 =이미지 제공 Nadine Bracht VG Bildkunst (저작권)
[뉴스플릭스] 김승호 철학박사/동아대학교수 =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여름, 예술대학 캠퍼스 전체가 거대한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변했다. 강의실과 아틀리에, 공방과 복도는 물론 계단과 로비, 테라스까지 작품이 들어섰다. 완성된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실험적인 설치와 퍼포먼스, 건축 모형, 디자인 프로젝트가 캠퍼스 곳곳을 점유했다. 평소 학생들이 공부하고 작업하던 공간과 예술작품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예술대학 가운데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Staatliche 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Stuttgart, 이하 ABK Stuttgart)을 방문했다. 순수미술을 비롯해 건축, 디자인, 문화재 보존·복원, 미술학과 미학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 전반을 포괄하는 이 대학의 매년 여름학기 말 개최되는 ‘룬트강(Rundgang)’을 둘러봤다.
독일어 ‘룬트강(Rundgang)’은 ‘한 바퀴 둘러보다’라는 뜻이다. 한국 미술대학의 오픈 스튜디오와 비슷하지만 그 규모와 성격은 매우 다르다. 학교의 작업실과 교육시설 대부분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학생들은 한 해 동안 고민하고 실험한 결과를 사회 앞에 내놓는다. 학생들의 학업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인 동시에 시민, 예술가,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 비평가와 언론이 함께 만나는 공공적인 예술축제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 850명의 학생, 캠퍼스 전체를 전시장으로
2026년 ABK 룬트강은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동안 바이센호프(Weißenhof) 캠퍼스에서 열렸다. 총장 에바-마리아 셍(Eva-Maria Seng)의 개막 선언에 이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학술연구예술부 국무차관 네셰 에리클리(Neşe Erikli)가 축사를 전했다.
이번 행사에는 약 85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ABK의 전체 교육·연구 사용 공간은 약 2만 1,000㎡(약 6,353평)에 이르며, 그 가운데 행사의 중심인 바이센호프 캠퍼스의 사용 면적은 약 1만 7,600㎡(약 5,324평)이다. 구건축, 도자, 조각, 신건축 1, 실기동, 신건물 2 등 주요 건물과 그 사이의 공간이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캠퍼스가 자리한 바이센호프 자체도 근대건축사에서 특별한 장소다. 대학 바로 인근에는 1927년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주거건축 실험으로 탄생한 거주지가 자리한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한스 샤로운 등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참여했고, 특히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주택들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역사와 21세기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셈이다.
캠퍼스 내부에서도 이러한 시간의 중첩은 계속된다. 신건물 2 로비에 설치된 백남준의 〈쌍방향 소통(Two Way Communication)〉(1996) 주변에 학생들의 작품이 들어서면서 평소의 교육공간은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가 만나는 전시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미 미술사의 일부가 된 백남준의 작업과 이제 막 예술가로 출발하는 학생들의 실험이 같은 장소에 놓인 장면은 이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 예술의 런웨이가 된 캠퍼스
현지 언론의 관심도 컸다. 슈투트가르트의 일간지《Stuttgarter Zeitung》은 행사 기간 ABK 캠퍼스가 하나의 ‘예술의 런웨이(Kunstlaufsteg)’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국립일간지《Staatsanzeiger Baden-Württemberg》는 순수미술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보존·복원, 미술학과 미학까지 아카데미 전체가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제 미술 매체 e-flux도 2026년 룬트강을 소개했다. 특히 올 행사가 독일의 마을 축제와 장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네온 컬러와 강렬한 타이포그래피, 캠퍼스 곳곳에서 움직이는 야외 댄서(Air Dancer)가 관람객을 맞았다. 안내판과 홍보물마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하나의 시각문화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룬트강의 진정한 주인공은 학생들의 작업이었다.
아틀리에 안에서는 회화와 드로잉이 벽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복도와 계단에서는 조각과 설치작업이 건축구조와 충돌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캠퍼스 곳곳에서는 신체와 정체성, 기억과 역사, 환경과 기술 문제를 다룬 퍼포먼스와 미디어 작업이 이어졌다. 건축과 디자인 전공에서는 실제 사회와 도시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와 실험적인 시제품이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장르의 경계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회화가 설치가 되고, 조각이 건축과 만나며, 드로잉은 퍼포먼스로 확장된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필요에 따라 이미지와 사물, 공간과 신체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바로 여기에서 ABK 교육의 중요한 특징을 읽을 수 있다. 학생에게 특정한 양식이나 정답을 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적합한 매체와 방법을 찾아가게 한다. 따라서 룬트강에서 관람객이 만나는 것은 완성작만이 아니다. 시행착오와 실험, 실패와 수정까지 포함한 예술적 사고의 과정이다.
■ 학교 밖으로 나온 예술교육
행사 기간에는 다양한 수상도 이어졌다. 아카데미상, 퍼포먼스상, 발터 스트로헤(Walter Stroher)상, 독일학생국제교류처(DAAD)상, 에르빈-하인레(Erwin Heinle) 상이 수여됐다. 학생들의 작업을 학교 내부에서만 평가하지 않고 사회와 전문 예술계의 시선 앞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도 북돋운 결과다.
룬트강은 한 해 교육의 마지막 단계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로서 사회에 진입하는 첫 단계다.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교수에게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시민과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관람객 역시 완성된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실에 들어가 작가와 대화를 나눈다. 따라서 교육과 전시, 창작과 비평, 대학과 사회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한국의 미술대학 교육을 생각할 때도 이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학에서 만들어진 예술이 졸업전이나 과제전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만날 때 예술교육의 의미는 달라진다. 학교가 하나의 문화공간이 되고 시민은 대학에서 진행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에 참여한다.
ABK의 룬트강이 매년 많은 사람을 캠퍼스로 불러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명 작가의 완성된 작품을 보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전시다. 오늘 작업실에서 만난 한 학생이 몇 년 뒤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 자유로운 예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2026년 룬트강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의 화려함보다 젊은 예술가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의 조우였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개인의 기억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술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필자의 눈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들이다.
학생들은 그들의 작업에서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회화와 조각, 설치와 건축,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시각화했다. 그들에게 예술가의 자유는 단순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고,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의심하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자유인 셈이다. ABK의 룬트강은 그러한 자유가 교육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작품과 행동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임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다.
캠퍼스 전체가 전시장이 되고, 교육공간이 실험실이 되며, 학생들의 질문이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전환되는 곳. 2026년 여름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난 룬트강은 대학 축제가 아니었다. 그곳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래의 예술이 태어나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필자의 방문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ABK와 룬트강에 관한 자료 제공을 아끼지 않은 총장 에바-마리아 셍 그리고 바스티안 에플레(Bastian Epple)와 안드레아스 바우어(Andreas Bauer)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김승호 동아대교수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 [룬트강] 예술축제 현장,퍼포먼스 수상작 및 전시장 =이미지 제공 Nadine Bracht VG Bildkunst (저작권)
[뉴스플릭스] 김승호 철학박사/동아대학교수 =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여름, 예술대학 캠퍼스 전체가 거대한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변했다. 강의실과 아틀리에, 공방과 복도는 물론 계단과 로비, 테라스까지 작품이 들어섰다. 완성된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실험적인 설치와 퍼포먼스, 건축 모형, 디자인 프로젝트가 캠퍼스 곳곳을 점유했다. 평소 학생들이 공부하고 작업하던 공간과 예술작품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예술대학 가운데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Staatliche 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Stuttgart, 이하 ABK Stuttgart)을 방문했다. 순수미술을 비롯해 건축, 디자인, 문화재 보존·복원, 미술학과 미학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 전반을 포괄하는 이 대학의 매년 여름학기 말 개최되는 ‘룬트강(Rundgang)’을 둘러봤다.
독일어 ‘룬트강(Rundgang)’은 ‘한 바퀴 둘러보다’라는 뜻이다. 한국 미술대학의 오픈 스튜디오와 비슷하지만 그 규모와 성격은 매우 다르다. 학교의 작업실과 교육시설 대부분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학생들은 한 해 동안 고민하고 실험한 결과를 사회 앞에 내놓는다. 학생들의 학업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인 동시에 시민, 예술가,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 비평가와 언론이 함께 만나는 공공적인 예술축제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 850명의 학생, 캠퍼스 전체를 전시장으로
2026년 ABK 룬트강은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동안 바이센호프(Weißenhof) 캠퍼스에서 열렸다. 총장 에바-마리아 셍(Eva-Maria Seng)의 개막 선언에 이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학술연구예술부 국무차관 네셰 에리클리(Neşe Erikli)가 축사를 전했다.
이번 행사에는 약 85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ABK의 전체 교육·연구 사용 공간은 약 2만 1,000㎡(약 6,353평)에 이르며, 그 가운데 행사의 중심인 바이센호프 캠퍼스의 사용 면적은 약 1만 7,600㎡(약 5,324평)이다. 구건축, 도자, 조각, 신건축 1, 실기동, 신건물 2 등 주요 건물과 그 사이의 공간이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캠퍼스가 자리한 바이센호프 자체도 근대건축사에서 특별한 장소다. 대학 바로 인근에는 1927년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주거건축 실험으로 탄생한 거주지가 자리한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한스 샤로운 등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참여했고, 특히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주택들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역사와 21세기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셈이다.
캠퍼스 내부에서도 이러한 시간의 중첩은 계속된다. 신건물 2 로비에 설치된 백남준의 〈쌍방향 소통(Two Way Communication)〉(1996) 주변에 학생들의 작품이 들어서면서 평소의 교육공간은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가 만나는 전시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미 미술사의 일부가 된 백남준의 작업과 이제 막 예술가로 출발하는 학생들의 실험이 같은 장소에 놓인 장면은 이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 예술의 런웨이가 된 캠퍼스
현지 언론의 관심도 컸다. 슈투트가르트의 일간지《Stuttgarter Zeitung》은 행사 기간 ABK 캠퍼스가 하나의 ‘예술의 런웨이(Kunstlaufsteg)’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국립일간지《Staatsanzeiger Baden-Württemberg》는 순수미술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보존·복원, 미술학과 미학까지 아카데미 전체가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제 미술 매체 e-flux도 2026년 룬트강을 소개했다. 특히 올 행사가 독일의 마을 축제와 장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네온 컬러와 강렬한 타이포그래피, 캠퍼스 곳곳에서 움직이는 야외 댄서(Air Dancer)가 관람객을 맞았다. 안내판과 홍보물마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하나의 시각문화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룬트강의 진정한 주인공은 학생들의 작업이었다.
아틀리에 안에서는 회화와 드로잉이 벽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복도와 계단에서는 조각과 설치작업이 건축구조와 충돌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캠퍼스 곳곳에서는 신체와 정체성, 기억과 역사, 환경과 기술 문제를 다룬 퍼포먼스와 미디어 작업이 이어졌다. 건축과 디자인 전공에서는 실제 사회와 도시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와 실험적인 시제품이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장르의 경계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회화가 설치가 되고, 조각이 건축과 만나며, 드로잉은 퍼포먼스로 확장된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필요에 따라 이미지와 사물, 공간과 신체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바로 여기에서 ABK 교육의 중요한 특징을 읽을 수 있다. 학생에게 특정한 양식이나 정답을 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적합한 매체와 방법을 찾아가게 한다. 따라서 룬트강에서 관람객이 만나는 것은 완성작만이 아니다. 시행착오와 실험, 실패와 수정까지 포함한 예술적 사고의 과정이다.
■ 학교 밖으로 나온 예술교육
행사 기간에는 다양한 수상도 이어졌다. 아카데미상, 퍼포먼스상, 발터 스트로헤(Walter Stroher)상, 독일학생국제교류처(DAAD)상, 에르빈-하인레(Erwin Heinle) 상이 수여됐다. 학생들의 작업을 학교 내부에서만 평가하지 않고 사회와 전문 예술계의 시선 앞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도 북돋운 결과다.
룬트강은 한 해 교육의 마지막 단계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로서 사회에 진입하는 첫 단계다.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교수에게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시민과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관람객 역시 완성된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실에 들어가 작가와 대화를 나눈다. 따라서 교육과 전시, 창작과 비평, 대학과 사회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한국의 미술대학 교육을 생각할 때도 이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학에서 만들어진 예술이 졸업전이나 과제전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만날 때 예술교육의 의미는 달라진다. 학교가 하나의 문화공간이 되고 시민은 대학에서 진행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에 참여한다.
ABK의 룬트강이 매년 많은 사람을 캠퍼스로 불러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명 작가의 완성된 작품을 보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전시다. 오늘 작업실에서 만난 한 학생이 몇 년 뒤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 자유로운 예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2026년 룬트강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의 화려함보다 젊은 예술가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의 조우였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개인의 기억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술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필자의 눈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들이다.
학생들은 그들의 작업에서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회화와 조각, 설치와 건축,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시각화했다. 그들에게 예술가의 자유는 단순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고,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의심하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자유인 셈이다. ABK의 룬트강은 그러한 자유가 교육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작품과 행동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임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다.
캠퍼스 전체가 전시장이 되고, 교육공간이 실험실이 되며, 학생들의 질문이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전환되는 곳. 2026년 여름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난 룬트강은 대학 축제가 아니었다. 그곳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래의 예술이 태어나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필자의 방문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ABK와 룬트강에 관한 자료 제공을 아끼지 않은 총장 에바-마리아 셍 그리고 바스티안 에플레(Bastian Epple)와 안드레아스 바우어(Andreas Bauer)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김승호 동아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