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역사는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인간 주체의 본질을 찾아가는 치열한 철학적 여정이다. 그동안 이 칼럼은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미술사 안에서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 추적해 왔다. 눈에 보이는 외부 세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하는 주체의 순수성을 선언했던 이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미술가들이 재현이라는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뿌리였다.
그러나 20세기의 참혹한 두 세계대전은 찬란했던 이성적 주체에 치명적인 균열을 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혼돈 속에서 이성적 사유를 극대화한 전전(戰前)의 기하학적 추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속에서 이성의 붕괴를 목도하고 탄생한 전후(戰後)의 추상표현주의 속으로 들어가보고자 한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 미술사도 독창적인 실존적 추상으로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흡할 뿐이다. 이 대전환을 통해 데카르트의 이성적 코기토가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관통하며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실존적·신체적 코기토로 어떻게 이행했는지 미술사와 철학의 시선으로 입체적으로 조명해 본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 1930, 캔버스에 유채, 46 × 46 cm, 쿤스트하우스 취리히(Kunsthaus Zürich, Switzerland). 자연의 외형적 재현을 모두 소거하고 수직·수평선과 삼원색, 무채색만을 남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의 정수작이다.
전전(戰前)의 기하학적 추상: 이성과 규칙을 통한 유토피아 기획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전후한 시기, 유럽의 예술가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파괴된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질서와 보편적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갔다. 외부 세계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택한 무기는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가변적인 자연을 철저히 배제한 ‘차가운 이성’과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이는 감각적 경험의 불확실성을 모두 의심하여 지워버리고(방법적 회의), 오직 명석판명(明晰判明)한 이성의 진리만을 남겨두었던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과 완벽히 일치한다. 미학자 빌헬름 보링거 역시 저서 『추상과 감정이입』에서 "인간이 외부 세계에 거대한 불안을 느낄 때, 오히려 가변적인 자연주의적 재현을 벗어나 영원불변한 규칙을 지닌 추상으로 도피한다"고 분석했다. 전전의 기하학적 추상은 이처럼 불안한 현실을 넘어, 인간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적 유토피아를 향한 지적·영적 직관의 산물이었다.
네덜란드의 피에트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외형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본질만을 남기기 위해 형태를 깎아 나갔다. 그 끝에서 도달한 곳이 바로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삼원색과 무채색뿐인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의 세계였다. 몬드리안에게 수직과 수평의 교차는 우주의 근원적인 대립 쌍(정신과 물질, 남성과 여성)이 이루는 완벽한 균형과 화해를 의미했다.
이는 전쟁으로 무너진 세계 위에 오직 인간의 명석한 이성적 사유로 구축해 낸 가장 완벽하고 객관적인 질서의 선언이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믿을 수 없다. 오직 내 이성이 사유해 낸 기하학적 법칙만이 영원하다”는 몬드리안의 태도는 바로 데카르트적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각적 현시(顯示)이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검은 사각형> , 1915, 캔버스에 유채, 79.5 × 79.5 cm,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이 작품은 그가 선언한 절대주의의 출발점이자, 그가 회화의 제로(0) 포인트라 명명한 작품이다. 현실의 재현이나 문학적 서사를 완전히 버리고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인간의 순수한 감정만을 남김으로써, 대상을 지배하던 서구 근대 회화의 관습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러시아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회화를 현실의 구상적 재현이 전혀 없는 완전히 제로(0)의 상태로 되돌렸다. 흰 바탕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검은 사각형> (1915)은 과거 미술이 수행하던 모든 사물성의 재현을 거부한 절대주의(Suprematism)의 선언이었다. 말레비치에 따르면 이는 순수 감정의 절대성인데, 이때의 감정은 개인의 사사로운 희로애락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세계의 중력과 형태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순수 사유 그 자체였다.
후대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정의한 ‘회화의 매체 순수성(평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레비치의 격렬한 단순성은 획기적이었다. <검은 사각형> 은 회화가 문학이나 역사 같은 외부의 서사적 도구로부터 완벽히 독립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순수한 조형적 사유 주체로 우뚝 선 철학적 사건이었다.
전후(戰後)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이성의 붕괴와 실존적 숭고
그러나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전전(戰前)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신뢰했던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 그리고 유토피아적 기획이 얼마나 허망하고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아우슈비츠와 731부대에서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목도한 인류는 거대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더 이상 인간을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로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데카르트의 명석했던 이성적 코기토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완전히 붕괴했다.
이 시기 미술의 중심지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에서 뉴욕으로 이동했고, 상실감과 허무의 대지 위에서 추상표현주의가 탄생했다. 전후의 예술가들은 전전의 기하학적 논리와 이성적 시스템을 거부했다. 대신 맑고 깨끗한 이성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인간 내부의 깊은 상처, 불안, 무의식 그리고 격정을 캔버스에 쏟아냈다. 그들은 사유를 넘어선 영역, 즉 “나는 몸부림친다, 고로 존재한다” 혹은 “나는 불안해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실존주의적 코기토로 이행한다.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선 잭슨 폴록의 작업에 대해 “어느 순간 미국의 화가들에게 캔버스는 더 이상 그림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Action)가 일어나는 경기장이 되었다”라는 기념비적인 미학적 선언을 남겼다. 폴록은 이젤을 치워버리고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채, 막대기나 붓을 이용해 물감을 떨어뜨리고 뿌리는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을 감행했다.
여기서 정신이 육체를 완벽히 통제한다는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의 도식이 깨진다. 캔버스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정교하게 계산된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과 캔버스라는 물질이 충돌한 사건의 기록이다. 이는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신체 현상학, 즉 인간은 머리뿐만 아니라 세계 내에 존재하는 살(Chair)로서의 신체를 통해 비로소 실존한다는 인식과 일치한다. 통제되지 않은 우연성과 역동적인 몸짓, 이것은 전후 인류가 직면한 극한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육체적 실존을 처절하게 증명하려 한 주체의 아름다운 몸부림이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오렌지와 옐로우(Orange and Yellow)' , 1956, 캔버스에 유채, 231.1 × 180.3 cm, 버팔로 AKG 미술관(Buffalo AKG Art Museum, New York, USA) 로스코는 이 거대한 색채의 심연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비극, 황홀경, 파멸 등)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전후 신과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종교적 숭고함을 경험하게 한다.
반면 마크 로스코는 이러한 격렬한 움직임 대신, 거대하고 모호한 색면을 통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비극, 황홀경, 파멸 등)을 정적으로 파고들었다. 로스코와 뜻을 함께했던 바네트 뉴먼 역시 전후의 추상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과감히 버리고, 인간을 압도하는 신비롭고 두려운 가치인 숭고(The Sublime)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코의 거대한 색면 앞에 선 관람객은 단순히 눈으로 형상을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온몸이 거대한 색채의 심연에 함몰되는 듯한 압도적인 지각 경험을 하게 된다. 로스코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그들과 종교적으로 소통했다고 느꼈다. 이는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를 넘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트라우마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려는 실존적 영성의 발현이었다.
한국의 실존적 추상: 이중의 트라우마와 물아일체의 미학
이러한 전후 서구의 실존적 몸부림은 지구 반대편,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이라는 ‘이중의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한국의 예술가들에게도 가장 뜨겁고 처절한 언어로 치환되었다. 1950년대 후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믹하고 보수적인 화풍과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등장한 한국의 ‘앵포르멜(Informel) 운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뜨거운 추상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그 비장함의 깊이가 남달랐던 우리 미술사 초유의 실존적 선언이었다. 서구의 예술가들이 전후의 허무를 노래했다면, 한국의 청년 작가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동족상잔의 잔해와 폐허 속에서 생존 자체를 부르짖어야 했기 때문이다.

박서보, '회화 No.1-57' , 1957, 캔버스에 유채, 95 × 82 cm, 기지재단 소장(Courtesy of Giji Foundation)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믹한 기득권에 반대하며 등장한 한국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의 시초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겪은 인간의 상처, 불안, 실존적 절규를 거칠고 정형화되지 않은 어두운 물성과 격렬한 몸짓으로 화면에 쏟아냈다.
한국 앵포르멜의 선구자인 박서보의 초기 대표작 <회화 No.1-57> (1957)은 전쟁이 남긴 육체적·정신적 파편들과 대량 학살의 공포를 목도한 젊은 예술가가 캔버스라는 영토 위에 뿜어낸 처절한 비명이자 생생한 신체적 흔적이었다. 화면은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이 짓겨진 어두운 안료, 불로 지진 듯한 얼룩, 그리고 날카로운 도구로 거칠게 긁어내고 파헤친 상처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 이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시대의 야만성과 문명의 배신을 향해 던지는 온몸의 항거였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를 경기장 삼아 격렬하게 움직였듯, 박서보 역시 머리로 정교하게 계산하고 사유하기 이전에 “나는 파괴된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한국적 코기토의 강렬한 실존적 궤적을 화면에 각인시켰다.
반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뉴욕 시기(1963~1974) 전면점화는 서구의 색면 추상이 도달한 냉철하거나 비장한 숭고의 개념을 넘어, 동양적인 자연 관조와 가슴 시린 그리움의 미학으로 전사한 아방가르드의 정점이다. 거대한 캔버스 가득 푸른빛의 점들을 무수히 찍어 내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등의 대작들은 마크 로스코가 추구했던 거대한 정신적 심연, 관람객을 압도하는 색채의 우주와 시각적으로 비견된다.

김환기, '우주(Universe 05-IV-71 #200)' ,1971, 코튼에 유채, 두 개의 패널로 구성된 디프틱, 254 × 254 cm (전체 크기 약 254 × 508 cm), 개인 소장. 뉴욕 시기 도달한 김환기 예술의 절정인 전면 점화의 대표작이다. 번짐 효과를 내는 푸른 점들을 무한히 찍어 나가는 신체적 몰입을 동반한 작품이다. 점을 찍는 행위를 통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사로운 자아(에고)를 지워내고, 자신을 거대한 우주적 자연의 흐름으로 환원시키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반(反)코기토적 한국 미술의 정수다.
그러니까 로스코의 숭고가 신 앞에 홀로 선 서구식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비극에 가까웠다면, 김환기의 점화는 작가가 먼 이국땅에서 고국에 두고 온 인연들의 얼굴, 유년 시절 바라보던 고향의 산천과 밤하늘을 하나하나의 점으로 불러내며 찍어 내려간 지극한 실존적 그리움의 수행 공간이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점 찍기를 통해 캔버스의 천 조직과 안료가 서로 스며들고 번지는 과정은 서구식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닌, 칠하는 주체와 칠해지는 객체의 경계가 흐려지는 과정이다. 김환기는 이 정적인 신체 행위의 연속 속에서 '생각하는 나(에고)'라는 오만한 주체를 완전히 지워내고, 마침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융합되는 동양적인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코기토’를 구현해 냈다.
본질의 설계도에서 실존의 고백록으로: 코기토의 위대한 대전환
유럽의 전전 기하학적 추상과 전후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한국의 앵포르멜과 초기 단색조 회화는 현실의 구체적인 재현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추상이라는 형식적 틀을 공유한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온몸으로 들이마셨던 시대의 공기와 그 안에서 붓을 들었던 동기, 그리고 비평가들이 포착한 미학적 태도는 전혀 다른 역사적 지점에 서 있었다. 이 극적인 대조와 패러다임의 양상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불멸의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정리된다.
몬드리안과 말레비치로 대변되는 전전의 예술가들은 세계대전의 파괴적인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이성의 회복 가능성을 신뢰했다. 그들은 차가운 기하학적 선과 수치적 비례, 객관적인 규칙을 통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완벽하고 보편적인 사회적 본질의 설계도를 제시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유례없는 참혹한 학살의 잔해를 직접 목도한 전후의 동서양 예술가들은 이성이 초래한 야만성 앞에서 그 어떤 정형화된 정답도, 유토피아적 도면도 남아있지 않은 철저한 허무(無)의 상태를 직면했다. 사르트르의 통찰대로 인간은 그 어떤 목적이나 본질도 미리 부여받지 못한 채 세계라는 거친 황무지에 그저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전후의 추상표현주의자들과 한국의 전후 청년 작가들은 질서정연한 이성의 계산을 미련 없이 내던졌다. 그들은 오직 캔버스라는 날것의 영토 위에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던지는 실존주의적 기투를 감행했다. 온몸의 궤적을 새기거나 거대한 색채의 심연을 구축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의 실존을 처절하게 증명해 나아갔던 것이다.

바네트 뉴먼(Barnett Newman), <영웅적이고 숭고한 인간(Vir Heroicus Sublimis)> , 1950~1951, 캔버스에 유채, 242.3 × 542.2 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New York, USA) 뉴먼은 이 거대한 화면 바로 앞에 관람객을 세워둠으로써 주변 공간을 모두 지워버린다. 관람객은 광활한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인간 존재의 절대적인 실존과 숭고함을 자각하게 된다.
결국, 전전의 기하학적 추상이 명석한 이성으로서 어떤 질서 있는 세계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선언했던 청사진이자 본질의 설계도였다면, 전후의 추상표현주의와 한국의 청년 앵포르멜 미술은 이 잔인하고 비극적인 세상에서 파산한 이성을 안고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실존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뇌했던 미시적이고도 주관적인 실존의 고백록이었다. 르네 데카르트가 선언했던 투명하고 오만했던 근대의 이성적 코기토는, 20세기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며 온몸으로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실존적 코기토로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왜 다시 100여 년 전의 치열했던 추상미술의 영토를 되돌아보는가? 미술관의 거대한 하얀 벽면 위에서 몬드리안의 차가운 직선을 마주할 때, 우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대 디지털 사회의 소음 속에서 기묘한 이성적 해방감과 평온함을 얻는다. 그리고 이내 폴록과 박서보의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신체적 흔적, 로스코와 김환기가 자아내는 먹먹하고 심오한 색채의 우주 앞에 설 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형언할 수 없는 울컥함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완벽한 규칙과 절대적 질서를 갈망하는 우리의 이성적 자아와, 예측 불가능한 삶의 영토에서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받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우리의 실존적 자아라는 양가적(兩價的) 자아가 동서양을 가로지른 추상의 시각적 언어와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시대를 비추는 가장 정직하고도 잔인한 거울이다. 인류가 문명의 방향을 잃고 거대한 어둠 속에 표류할 때, 한 번은 차가운 이성의 설계도로, 또 한 번은 뜨거운 격정과 실존의 고백록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수호하려 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가장 아름다운 몸부림이자 숭고한 미학적 망루인 것이다. 이제 우리만의 고백록에 철학적 성찰의 시간이 도래했다.

김승호 동아대교수, 철학박사
thepress1@naver.com
현대미술의 역사는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인간 주체의 본질을 찾아가는 치열한 철학적 여정이다. 그동안 이 칼럼은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미술사 안에서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 추적해 왔다. 눈에 보이는 외부 세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하는 주체의 순수성을 선언했던 이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미술가들이 재현이라는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뿌리였다.
그러나 20세기의 참혹한 두 세계대전은 찬란했던 이성적 주체에 치명적인 균열을 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혼돈 속에서 이성적 사유를 극대화한 전전(戰前)의 기하학적 추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속에서 이성의 붕괴를 목도하고 탄생한 전후(戰後)의 추상표현주의 속으로 들어가보고자 한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 미술사도 독창적인 실존적 추상으로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흡할 뿐이다. 이 대전환을 통해 데카르트의 이성적 코기토가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관통하며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실존적·신체적 코기토로 어떻게 이행했는지 미술사와 철학의 시선으로 입체적으로 조명해 본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 1930, 캔버스에 유채, 46 × 46 cm, 쿤스트하우스 취리히(Kunsthaus Zürich, Switzerland). 자연의 외형적 재현을 모두 소거하고 수직·수평선과 삼원색, 무채색만을 남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의 정수작이다.
전전(戰前)의 기하학적 추상: 이성과 규칙을 통한 유토피아 기획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전후한 시기, 유럽의 예술가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파괴된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질서와 보편적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갔다. 외부 세계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택한 무기는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가변적인 자연을 철저히 배제한 ‘차가운 이성’과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이는 감각적 경험의 불확실성을 모두 의심하여 지워버리고(방법적 회의), 오직 명석판명(明晰判明)한 이성의 진리만을 남겨두었던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과 완벽히 일치한다. 미학자 빌헬름 보링거 역시 저서 『추상과 감정이입』에서 "인간이 외부 세계에 거대한 불안을 느낄 때, 오히려 가변적인 자연주의적 재현을 벗어나 영원불변한 규칙을 지닌 추상으로 도피한다"고 분석했다. 전전의 기하학적 추상은 이처럼 불안한 현실을 넘어, 인간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적 유토피아를 향한 지적·영적 직관의 산물이었다.
네덜란드의 피에트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외형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본질만을 남기기 위해 형태를 깎아 나갔다. 그 끝에서 도달한 곳이 바로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삼원색과 무채색뿐인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의 세계였다. 몬드리안에게 수직과 수평의 교차는 우주의 근원적인 대립 쌍(정신과 물질, 남성과 여성)이 이루는 완벽한 균형과 화해를 의미했다.
이는 전쟁으로 무너진 세계 위에 오직 인간의 명석한 이성적 사유로 구축해 낸 가장 완벽하고 객관적인 질서의 선언이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믿을 수 없다. 오직 내 이성이 사유해 낸 기하학적 법칙만이 영원하다”는 몬드리안의 태도는 바로 데카르트적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각적 현시(顯示)이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검은 사각형> , 1915, 캔버스에 유채, 79.5 × 79.5 cm,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이 작품은 그가 선언한 절대주의의 출발점이자, 그가 회화의 제로(0) 포인트라 명명한 작품이다. 현실의 재현이나 문학적 서사를 완전히 버리고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인간의 순수한 감정만을 남김으로써, 대상을 지배하던 서구 근대 회화의 관습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러시아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회화를 현실의 구상적 재현이 전혀 없는 완전히 제로(0)의 상태로 되돌렸다. 흰 바탕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검은 사각형> (1915)은 과거 미술이 수행하던 모든 사물성의 재현을 거부한 절대주의(Suprematism)의 선언이었다. 말레비치에 따르면 이는 순수 감정의 절대성인데, 이때의 감정은 개인의 사사로운 희로애락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세계의 중력과 형태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순수 사유 그 자체였다.
후대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정의한 ‘회화의 매체 순수성(평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레비치의 격렬한 단순성은 획기적이었다. <검은 사각형> 은 회화가 문학이나 역사 같은 외부의 서사적 도구로부터 완벽히 독립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순수한 조형적 사유 주체로 우뚝 선 철학적 사건이었다.
전후(戰後)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이성의 붕괴와 실존적 숭고
그러나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전전(戰前)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신뢰했던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 그리고 유토피아적 기획이 얼마나 허망하고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아우슈비츠와 731부대에서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목도한 인류는 거대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더 이상 인간을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로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데카르트의 명석했던 이성적 코기토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완전히 붕괴했다.
이 시기 미술의 중심지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에서 뉴욕으로 이동했고, 상실감과 허무의 대지 위에서 추상표현주의가 탄생했다. 전후의 예술가들은 전전의 기하학적 논리와 이성적 시스템을 거부했다. 대신 맑고 깨끗한 이성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인간 내부의 깊은 상처, 불안, 무의식 그리고 격정을 캔버스에 쏟아냈다. 그들은 사유를 넘어선 영역, 즉 “나는 몸부림친다, 고로 존재한다” 혹은 “나는 불안해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실존주의적 코기토로 이행한다.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선 잭슨 폴록의 작업에 대해 “어느 순간 미국의 화가들에게 캔버스는 더 이상 그림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Action)가 일어나는 경기장이 되었다”라는 기념비적인 미학적 선언을 남겼다. 폴록은 이젤을 치워버리고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채, 막대기나 붓을 이용해 물감을 떨어뜨리고 뿌리는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을 감행했다.
여기서 정신이 육체를 완벽히 통제한다는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의 도식이 깨진다. 캔버스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정교하게 계산된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과 캔버스라는 물질이 충돌한 사건의 기록이다. 이는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신체 현상학, 즉 인간은 머리뿐만 아니라 세계 내에 존재하는 살(Chair)로서의 신체를 통해 비로소 실존한다는 인식과 일치한다. 통제되지 않은 우연성과 역동적인 몸짓, 이것은 전후 인류가 직면한 극한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육체적 실존을 처절하게 증명하려 한 주체의 아름다운 몸부림이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오렌지와 옐로우(Orange and Yellow)' , 1956, 캔버스에 유채, 231.1 × 180.3 cm, 버팔로 AKG 미술관(Buffalo AKG Art Museum, New York, USA) 로스코는 이 거대한 색채의 심연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비극, 황홀경, 파멸 등)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전후 신과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종교적 숭고함을 경험하게 한다.
반면 마크 로스코는 이러한 격렬한 움직임 대신, 거대하고 모호한 색면을 통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비극, 황홀경, 파멸 등)을 정적으로 파고들었다. 로스코와 뜻을 함께했던 바네트 뉴먼 역시 전후의 추상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과감히 버리고, 인간을 압도하는 신비롭고 두려운 가치인 숭고(The Sublime)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코의 거대한 색면 앞에 선 관람객은 단순히 눈으로 형상을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온몸이 거대한 색채의 심연에 함몰되는 듯한 압도적인 지각 경험을 하게 된다. 로스코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그들과 종교적으로 소통했다고 느꼈다. 이는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를 넘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트라우마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려는 실존적 영성의 발현이었다.
한국의 실존적 추상: 이중의 트라우마와 물아일체의 미학
이러한 전후 서구의 실존적 몸부림은 지구 반대편,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이라는 ‘이중의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한국의 예술가들에게도 가장 뜨겁고 처절한 언어로 치환되었다. 1950년대 후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믹하고 보수적인 화풍과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등장한 한국의 ‘앵포르멜(Informel) 운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뜨거운 추상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그 비장함의 깊이가 남달랐던 우리 미술사 초유의 실존적 선언이었다. 서구의 예술가들이 전후의 허무를 노래했다면, 한국의 청년 작가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동족상잔의 잔해와 폐허 속에서 생존 자체를 부르짖어야 했기 때문이다.
박서보, '회화 No.1-57' , 1957, 캔버스에 유채, 95 × 82 cm, 기지재단 소장(Courtesy of Giji Foundation)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믹한 기득권에 반대하며 등장한 한국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의 시초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겪은 인간의 상처, 불안, 실존적 절규를 거칠고 정형화되지 않은 어두운 물성과 격렬한 몸짓으로 화면에 쏟아냈다.
한국 앵포르멜의 선구자인 박서보의 초기 대표작 <회화 No.1-57> (1957)은 전쟁이 남긴 육체적·정신적 파편들과 대량 학살의 공포를 목도한 젊은 예술가가 캔버스라는 영토 위에 뿜어낸 처절한 비명이자 생생한 신체적 흔적이었다. 화면은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이 짓겨진 어두운 안료, 불로 지진 듯한 얼룩, 그리고 날카로운 도구로 거칠게 긁어내고 파헤친 상처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 이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시대의 야만성과 문명의 배신을 향해 던지는 온몸의 항거였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를 경기장 삼아 격렬하게 움직였듯, 박서보 역시 머리로 정교하게 계산하고 사유하기 이전에 “나는 파괴된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한국적 코기토의 강렬한 실존적 궤적을 화면에 각인시켰다.
반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뉴욕 시기(1963~1974) 전면점화는 서구의 색면 추상이 도달한 냉철하거나 비장한 숭고의 개념을 넘어, 동양적인 자연 관조와 가슴 시린 그리움의 미학으로 전사한 아방가르드의 정점이다. 거대한 캔버스 가득 푸른빛의 점들을 무수히 찍어 내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등의 대작들은 마크 로스코가 추구했던 거대한 정신적 심연, 관람객을 압도하는 색채의 우주와 시각적으로 비견된다.
김환기, '우주(Universe 05-IV-71 #200)' ,1971, 코튼에 유채, 두 개의 패널로 구성된 디프틱, 254 × 254 cm (전체 크기 약 254 × 508 cm), 개인 소장. 뉴욕 시기 도달한 김환기 예술의 절정인 전면 점화의 대표작이다. 번짐 효과를 내는 푸른 점들을 무한히 찍어 나가는 신체적 몰입을 동반한 작품이다. 점을 찍는 행위를 통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사로운 자아(에고)를 지워내고, 자신을 거대한 우주적 자연의 흐름으로 환원시키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반(反)코기토적 한국 미술의 정수다.
그러니까 로스코의 숭고가 신 앞에 홀로 선 서구식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비극에 가까웠다면, 김환기의 점화는 작가가 먼 이국땅에서 고국에 두고 온 인연들의 얼굴, 유년 시절 바라보던 고향의 산천과 밤하늘을 하나하나의 점으로 불러내며 찍어 내려간 지극한 실존적 그리움의 수행 공간이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점 찍기를 통해 캔버스의 천 조직과 안료가 서로 스며들고 번지는 과정은 서구식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닌, 칠하는 주체와 칠해지는 객체의 경계가 흐려지는 과정이다. 김환기는 이 정적인 신체 행위의 연속 속에서 '생각하는 나(에고)'라는 오만한 주체를 완전히 지워내고, 마침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융합되는 동양적인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코기토’를 구현해 냈다.
본질의 설계도에서 실존의 고백록으로: 코기토의 위대한 대전환
유럽의 전전 기하학적 추상과 전후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한국의 앵포르멜과 초기 단색조 회화는 현실의 구체적인 재현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추상이라는 형식적 틀을 공유한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온몸으로 들이마셨던 시대의 공기와 그 안에서 붓을 들었던 동기, 그리고 비평가들이 포착한 미학적 태도는 전혀 다른 역사적 지점에 서 있었다. 이 극적인 대조와 패러다임의 양상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불멸의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정리된다.
몬드리안과 말레비치로 대변되는 전전의 예술가들은 세계대전의 파괴적인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이성의 회복 가능성을 신뢰했다. 그들은 차가운 기하학적 선과 수치적 비례, 객관적인 규칙을 통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완벽하고 보편적인 사회적 본질의 설계도를 제시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유례없는 참혹한 학살의 잔해를 직접 목도한 전후의 동서양 예술가들은 이성이 초래한 야만성 앞에서 그 어떤 정형화된 정답도, 유토피아적 도면도 남아있지 않은 철저한 허무(無)의 상태를 직면했다. 사르트르의 통찰대로 인간은 그 어떤 목적이나 본질도 미리 부여받지 못한 채 세계라는 거친 황무지에 그저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전후의 추상표현주의자들과 한국의 전후 청년 작가들은 질서정연한 이성의 계산을 미련 없이 내던졌다. 그들은 오직 캔버스라는 날것의 영토 위에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던지는 실존주의적 기투를 감행했다. 온몸의 궤적을 새기거나 거대한 색채의 심연을 구축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의 실존을 처절하게 증명해 나아갔던 것이다.
바네트 뉴먼(Barnett Newman), <영웅적이고 숭고한 인간(Vir Heroicus Sublimis)> , 1950~1951, 캔버스에 유채, 242.3 × 542.2 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New York, USA) 뉴먼은 이 거대한 화면 바로 앞에 관람객을 세워둠으로써 주변 공간을 모두 지워버린다. 관람객은 광활한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인간 존재의 절대적인 실존과 숭고함을 자각하게 된다.
결국, 전전의 기하학적 추상이 명석한 이성으로서 어떤 질서 있는 세계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선언했던 청사진이자 본질의 설계도였다면, 전후의 추상표현주의와 한국의 청년 앵포르멜 미술은 이 잔인하고 비극적인 세상에서 파산한 이성을 안고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실존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뇌했던 미시적이고도 주관적인 실존의 고백록이었다. 르네 데카르트가 선언했던 투명하고 오만했던 근대의 이성적 코기토는, 20세기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며 온몸으로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실존적 코기토로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왜 다시 100여 년 전의 치열했던 추상미술의 영토를 되돌아보는가? 미술관의 거대한 하얀 벽면 위에서 몬드리안의 차가운 직선을 마주할 때, 우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대 디지털 사회의 소음 속에서 기묘한 이성적 해방감과 평온함을 얻는다. 그리고 이내 폴록과 박서보의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신체적 흔적, 로스코와 김환기가 자아내는 먹먹하고 심오한 색채의 우주 앞에 설 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형언할 수 없는 울컥함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완벽한 규칙과 절대적 질서를 갈망하는 우리의 이성적 자아와, 예측 불가능한 삶의 영토에서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받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우리의 실존적 자아라는 양가적(兩價的) 자아가 동서양을 가로지른 추상의 시각적 언어와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시대를 비추는 가장 정직하고도 잔인한 거울이다. 인류가 문명의 방향을 잃고 거대한 어둠 속에 표류할 때, 한 번은 차가운 이성의 설계도로, 또 한 번은 뜨거운 격정과 실존의 고백록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수호하려 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가장 아름다운 몸부림이자 숭고한 미학적 망루인 것이다. 이제 우리만의 고백록에 철학적 성찰의 시간이 도래했다.
김승호 동아대교수,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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