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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방가르드의 혁신성: 제도와 체제의 배설물을 박제하는 3인의 도발성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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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플릭스]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아방가르드의 본질을 건축적 맥락에서 짚어보았다. 아방가르드가 발동시킨 미학적 태도는 시대를 달리하며 예술의 개념적·물질적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해 온 강력한 ‘혁신성’의 원천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전통적 예술 개념과 온전한 형태의 성역을 폭파했다면, 전후의 네오 아방가르드는 그 폭파의 연쇄 반응을 자본과 시장의 심장부로 확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전위예술가들은 이를 독재와 통제라는 특수한 역사적 지형 위에서 주체적으로 변주해 냈다.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단순히 새로운 시대 양식을 발명하는 데 있지 않다. 자본과 체제가 유통하는 배설물들을 역으로 박제함으로써 시대를 뒤흔든 세 명의 작가, 그리고 그들의 세 문제작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파리의 공기 50cc(50 cc d'air de Paris)], 1919년 (1949년 등 후대에 복제품 제작), 유리 앰플 (Ready-made수정액 병 형태), 높이 약 13.5 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소장.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파리의 공기 50cc(50 cc d'air de Paris)], 1919년 (1949년 등 후대에 복제품 제작), 유리 앰플 (Ready-made수정액 병 형태), 높이 약 13.5 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소장.


역사적 아방가르드: 마르셀 뒤샹의 <파리의 공기 50cc> (1919)


아방가르드 혁신성의 첫 번째 징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마저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예술의 비물질화였다. 1919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파리의 한 약국에서 속이 텅 빈 의학용 유리 앰플을 구입한 뒤, 그 안의 공기를 밀봉하여 〈파리의 공기 50cc〉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열렬한 미국인 후원자이자 수집가였던 월터 아렌스버그에게 선물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 상실 개념을 경유해야 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이르러 예술 작품이 지닌 일회성과 신성함(아우라)이 해체되었다고 보았다. 뒤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복제 기술뿐만 아니라, 작가가 손수 기물을 제작하는 노동/수작업 자체를 소거함으로써 아우라의 기반을 근원부터 무너뜨린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된 <파리의 공기 50cc>의 미학적 정점은 정교한 공간적·소유적 비틀기에 있다. 후원자인 아렌스버그는 거금의 가치를 지닌 예술품을 획득했다고 믿었으나, 그가 물리적으로 소유한 것은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50cc의 흔한 기체일 뿐이다. 만약 유리병이 깨지는 순간, 예술적 가치를 담보하던 물리적 실체는 문자 그대로 증발하여 영원히 사라진다.


뒤샹은 대상의 고유한 형태나 작가의 숙련된 기술/기법을 감상하는 망막적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 유리병 안의 공기는 물질이 아니라, 그것을 예술로 명명한 작가의 선택(Choice)과 후원자가 맹신하는 예술 제도의 허구성을 고스란히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다. 대상의 물성을 지워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술의 개념을 무한히 확장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전위적 출발점이다.


피에로 만조니 (Piero Manzoni), [작가의 변(Merda d'Artista)], 1961년 5월, 캔, 인쇄된 종이, 대변, 4.8 x 6.5 cm, (총 90개 에디션 제작), 영국 테이트 모던, 이탈리아 밀라노 현대미술관 등 소장.

피에로 만조니 (Piero Manzoni), [작가의 변(Merda d'Artista)], 1961년 5월, 캔, 인쇄된 종이, 대변, 4.8 x 6.5 cm, (총 90개 에디션 제작), 영국 테이트 모던, 이탈리아 밀라노 현대미술관 등 소장.


네오 아방가르드: 피에로 만조니의 <작가의 변> (1961)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네오 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와는 전혀 다른 절망과 마주했다. 뒤샹이 던진 파격적인 질문마저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포섭하고 상품화해 버리는 물화(物化)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를 “물화”와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으로 비판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선 인간의 순수한 정신적 활동인 예술마저도 결국 교환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타락한다는 절망이었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적 주술에 가장 불쾌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균열을 낸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다. 만조니는 1961년, 자신의 대변을 캔에 담아 밀봉한 뒤 <작가의 변(Artist's Shit)>이라는 직설적인 타이틀을 붙여 총 90개의 에디션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 캔의 가격을 당일 금 시세와 동일한 무게로 책정하여 시장에 내놓았다.


이 작업의 구조는 대단히 정교한 철학적 덫이다. 대중과 컬렉터들은 예술가의 고귀한 정신이 깃들었다는 믿음 하나로, 캔버스 위에 뭉쳐진 물감 덩어리를 황금보다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 만조니는 "그렇다면 예술가의 신체적 대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가장 비천한 배설물 역시 황금의 가치를 지녀야 마땅하지 않으냐"고 반문한 것이다.


뒤샹이 투명한 공기라는 비물질로 제도의 경계를 물었다면, 만조니는 가장 날것의 둔탁한 물질을 통해 예술을 투기 대상으로 삼는 시장의 위선과 맹목성을 폭로했다. 특히 캔의 내부를 확인할 수 없기에(열어보는 순간 상품 가치가 멸실되므로), 사람들은 결국 작가의 배설물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물신숭배적 '믿음' 자체를 구매하게 된다. 아도르노가 경고한 물화된 예술 시장의 민낯을 가장 비천한 배설물이라는 거울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 네오 아방가르드의 치명적인 혁신이다.


성능경, [신문 읽기(또는 [신문: 1974년 6월 1일 이후]연작 및 퍼포먼스)], 1976년 (ST 그룹 전시 등에서 초연 및 진행), 일간신문, 면도칼, 아크릴 상자, 행위(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MMCA)소장.

성능경, [신문 읽기(또는 [신문: 1974년 6월 1일 이후]연작 및 퍼포먼스)], 1976년 (ST 그룹 전시 등에서 초연 및 진행), 일간신문, 면도칼, 아크릴 상자, 행위(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MMCA)소장.


한국적 응답: 성능경의 <신문 읽기> (1976)


서구의 아방가르드가 예술 제도와 자본 시장이라는 내부의 적에 대항했다면, 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은 유신체제라는 정치적 억압과 근대화의 폭력성이라는 외부의 거대한 벽에 부딪힌 치열한 응답이었다.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성능경은 서구의 개념미술적 어법을 주체적으로 흡수하여, 숨 막히던 한국의 시대적 현실을 저격하는 날카로운 미학적 무기로 재조련해 냈다.


그의 기념비적인 행위 미술 <신문 읽기>(1976)에서 작가는 당일 발행된 일간신문을 전시장 벽에 길게 이어 붙인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면도칼을 들어 신문의 기사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오려내어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밀봉했다. 기사가 전부 소거되어 광고와 흰 여백, 격자무늬 프레임만 남은 신문의 잔해 앞에서, 작가는 텍스트가 사라진 텅 빈 지면을 무미건조하게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이 행위는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과 권력의 결탁 그리고 사회를 통제하는 담론권력의 구조를 정면으로 해체한다. 유신 치하의 신문은 진실을 보도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매일같이 생산하고 배설해 내는 통제된 담론이자 선전 매체였다. 성능경은 이 체제의 배설물들을 면도칼이라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로 도려냄으로써, 권력이 부여한 가짜 정보의 아우라를 박제하고 그 가치를 무화시켰다.


뒤샹이 파리의 투명한 공기를 가두었듯 성능경은 당대 한국을 지배하던 숨 막히는 정치적 공기를 포착했고, 만조니가 신체의 배설물을 캔에 봉인했듯 성능경은 체제가 유통하는 정보의 배설물을 봉인했다. 거창한 정치적 구호나 선동적인 기술 없이도, 묵묵히 행하는 신체적 반복을 통해 권력의 허구성을 서늘하게 폭로한 한국적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도약이다.


영원한 미완성, 현실의 벽을 깨는 전위의 엔진


뒤샹이 가둔 파리의 공기, 만조니가 금값으로 치환한 배설물 그리고 성능경이 면도칼로 해체해 버린 신문의 파편들은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이 결단코 새로운 시각적 스타일의 발명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방가르드는 예술을 둘러싼 완고한 세계의 벽—그것이 박제된 미술관이든, 물화된 자본 시장이든, 신체를 통제하는 국가 권력이든—과 부딪히며 끊임없이 치명적인 균열을 내는 비판적 지성의 작동 방식이다.


그들이 남긴 도발적인 흔적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거대한 관습과 제도적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는가. 상식이라는 이름의 우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를 허물며,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부정해 나가는 불온한 시선이 살아있는 한, 아방가르드는 결코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박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현실의 가장 최전선에서 작동하는, 그러나 완성되지 않을 영원한 혁신의 동력이다.


출처 : 뉴스플릭스(NewsFlix)(https://www.newsflix.co.kr)


김승호 철학박사  jineui@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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