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명제와 조각의 패러다임 전환
현대미술의 역사는 고정된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고 영토를 확장해 온 투쟁의 기록이다. 회화가 르네상스 이래 지속된 2차원 평면의 환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 내부와 외부를 재정의했듯이, 조각 역시 전통적인 재현의 영역을 탈피하며 새로운 시각적·공간적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특히 20세기 현대조각이 이룩한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그것이 삼차원의 물질적 사물을 만드는 예술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예술로 그 본질이 전도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현대미술의 핵심 화두인 추상성(abstraction)과 공간성(spatiality)의 비약적인 확대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본 현대미술론 칼럼의 첫 회부터 필자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미술작품의 시각 언어를 통해 읽어보고자 시도했다. 이 명제는 물질적 신체와 분리된 인간 정신의 주체성,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현대조각의 흐름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20세기의 조각가들은 눈에 보이는 지각적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복제하는 장인적 재현을 거부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사유, 사물과 인간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나아가 존재와 세계-내-존재 그 자체의 본질적 문제를 치열하게 탐구해 왔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조각은 더 이상 덩어리(mass)의 예술이 아니라, 존재를 사유하게 만드는 정신적 매개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알렉산더 칼더의 <꽃잎의 아치>: 덩어리의 소멸과 시공간의 역동성
![[크기변환]현대미술론 칼럼 14, 칼더.jpg](https://thepress1.com/data/photo/2606/20260615214418_1e6bfedfd11c06c40cd0fed18c572b9d_0mja.jpg)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꽃잎의 아치(Arc of Petals)>, 1941, 알루미늄 판, 철사, 도료
현대조각이 고정된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추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위대한 전환점의 중심에는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가 있다. 마르셀 뒤샹이 모빌(Mobile)이라 명명한 그의 혁신적인 조각들은 조각이 어떻게 3차원의 물질성을 넘어 4차원의 시간과 우연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시각적 지표이다.
그의 초기 모빌 대표작인 <꽃잎의 아치(Arc of Petals)>(1941)는 전통 조각이 고수해 온 육중한 덩어리를 완전히 소거해 버린 작품이다. 칼더는 깎거나 붙여서 부피를 만드는 대신, 가느다란 철사와 얇은 금속판만을 이용해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선과 면의 구조를 구축했다. 이 작품은 고정된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한 채, 미세한 공기의 흐름(기류)에 반응하며 스스로 움직이고 매 순간 새로운 형태의 궤적을 그려낸다.
여기에 조각의 위대한 혁신성이 있다. 칼더에게 공간은 작품이 놓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과 함께 호흡하고 완성되는 능동적인 매개체다. 철사 끝에 매달린 금속 조각들의 느린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시각화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조각 내부로 끌어들인다.
칼더는 이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조각을 우주의 천체 운동과 생명의 순환 원리로 독해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화된 추상적 선과 움직임으로 대상을 응축해 낸 형이상학적 시도이다. 이로써 칼더는 조각을 물질의 무게감에서 해방시켰으며, 공간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존재의 장으로 확장하는 서막을 열었다.
데이비드 스미스의 <큐비(Cubi)> 연작: 산업 재료와 열린 공간의 구조학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큐비(Cubi)> 연작, 1961~1965, 스테인리스 스틸
칼더가 철사를 통해 고정된 덩어리를 지우고 공간과 호흡하는 선의 전략을 적용했다면, 그의 철사 조각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미국의 조각가 데이비드 스미(David Smith, 1906~1965)는 조각을 외부의 물리적 공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열린 구조로 이행시킨다. 그의 기념비적인 연작인 <큐비(Cubi)>(1961~1965 제작)는 회화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3차원 공간으로 번안해 낸 현대조각의 이정표이다.
스미스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대리석이나 청동 대신, 대량생산의 상징이자 현대 산업 사회의 핵심 재료인 철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대담하게 도입했다. 그는 젊은 시절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승화시켜, 거대한 기하학적 입방체들을 용접하여 공중에 띄우듯 결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큐비>연작의 핵심적인 미학적 가치는 덩어리 자체보다, 형태와 형태 사이에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빈 공간을 조각의 주연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밀어내는 배타적인 덩어리였다면, 스미스의 구조물은 칼더가 열어놓은 추상의 가능성을 이어받아 공간을 품어 안고 관통시키는 개방적 구조를 지닌다.
특히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을 그라인더로 거칠게 연마했는데, 이 무수한 스크래치들은 고정된 색채가 아니라 작품이 설치된 야외의 자연광,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 주변 수목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따라서 관람자가 작품 주위를 이동함에 따라 조각의 표면과 형태들 사이의 공간 관계는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제 조각은 주변 환경과 단절된 고립된 물체가 아니라, 자신을둘러싼 대기와 빛, 그리고 관람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공간적 구조가 된다.
문신의 <우주를 향하여>: 유기적 시메트리와 정신적 공간의 조형화

문신(Moon Shin), <우주를 향하여(Towards the Universe)> 연작, 1970~1990년대, 스테인리스 스틸(혹은 흑단 등),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전시장 내부 소장 및 설치
서구의 현대조각이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개척해 나갈 때, 한국의 현대조각가 문신(文信, 1923~1995)은 동양적 자연관과 생명주의 미술을 바탕으로 추상 공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적 결실인 「우주를 향하여」 연작은 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추상조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준다.
문신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조형 원리는 유기적 시메트리(대칭성)과 반복이다. 그 역시 자연의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곤충의 마디, 식물의 줄기, 인간의 척추, 혹은 세포의 분열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곡선들을 완벽에 가까운 좌우 대칭 구조로 병치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단단한 흑단을 깎고 다듬어 만든 그의 조각은 고도로 세련된 기계적 정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로부터 꿈틀거리며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를 내포한다.
<우주를 향하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문신의 조각은 단순한 물질적 오브제를 넘어선다. 그의 작품에서 대칭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선과 면의 율동은 칼더가 모빌을 통해 구현했던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순환 법칙을 아시아적 명상과 융합하여 시각화한 것이다. 거대하게 솟구치는 곡선의 형태들은 주변 공간을 긴장시키며, 물질로서의 조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우주적 공간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질량과 부피를 가진 3차원의 조각을 통해 무한(infinity)이라는 사유의 장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문신의 조각은 아시아의 명상적 사유와 서양의 추상 조형이 만나는 한국 현대조각사의 주요한 기점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역사, 존재를 사유하는 장(場)
이처럼 20세기 작가들이 감행한 파격적인 시공간적 실험들은 미술비평과 이론의 영역에서도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1941~)는 자신의 『현대조각의 흐름』을 통해 현대조각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였다. 현대조각이 더 이상 기념비라는 전통적인 미학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며, 좌대를 상실한 채 풍경도 아니고 건축도 아닌' 부정(negation)의 논리가 증명되기 시작 했다. 물론, 그에게 기호학적 대방형 논리는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건축, 풍경, 장소,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영토를 확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더와 스미스 그리고 문신의 실험들은 조각이 확장된 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미술사적 필연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결국 현대조각의 역사는 시각적 형태(form)의 변천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의 정복이자 확장사(史)이다. 20세기의 조각가들은 단단하고 고정된 물질적 대상에서 출발했으나, 그 물질성을 해체하거나 변형함으로써 공간과 신체적 경험 그리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미의 영역을 넓혀왔다. 알렉산더 칼더가 고정된 덩어리를 지우고 시간과 기류를 대입해 움직이는 시공간을 창조했고, 데이비드 스미스가 산업적 재료를 매개로 주변 환경과 호흡하는 구조적 개방 공간을 실험했으며, 문신이 대칭과 반복의 미학을 통해 무한한 우주적 정신 공간을 조형화했듯이, 이제 현대조각은 더 이상 인간과 분리된 차가운 사물의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예술이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드는 철학적 매체이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이나 거대한 도시의 광장, 혹은 광활한 자연 속에 놓인 현대조각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은 박제된 하나의 사물을 수동적으로 관조하는 행위가 아니다. 조각적 에너지와 그 조각이 재정의한 물리적·정신적 공간 속으로 능동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지금, 여기(Hic et Nunc)' 존재하는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인 것이다. 조각이 열어젖힌 그 추상의 장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물질을 초월하여 존재의 장으로 나아간 현대조각의 영토 확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정립한 고전적 예술론으로 완결된다. 과거의 전통 조각이 돌이나 청동이라는 가공되지 않은 질료(Hyle)에 인체의 비례나 신화적 서사라는 고정된 형상(Morphe)을 부여하는 덩어리(Mass)의 예술이었다면, 현대 조각가들은 철과 스틸을 넘어 공기, 기류,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까지도 새로운 차원의 질료로 선택했다. 육중한 물질성은 지워졌으나 그들이 추구한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규칙을 밝히고 우주의 순환 원리라는 새로운 시대의 형상(Morphe)을 구현해 낸 것이다. 물질적 사물을 넘어 관조자에게 존재론적 성찰을 선사하는 이 궁극의 목적은, 예술을 통해 사물의 보편적 본질과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적 통찰을 다시 숙고하게 한다. 현대조각은 질료의 한계를 끊임없이 초월하면서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드는 영원한 '형상의 장'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유를 촉구한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데카르트의 명제와 조각의 패러다임 전환
현대미술의 역사는 고정된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고 영토를 확장해 온 투쟁의 기록이다. 회화가 르네상스 이래 지속된 2차원 평면의 환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 내부와 외부를 재정의했듯이, 조각 역시 전통적인 재현의 영역을 탈피하며 새로운 시각적·공간적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특히 20세기 현대조각이 이룩한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그것이 삼차원의 물질적 사물을 만드는 예술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예술로 그 본질이 전도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현대미술의 핵심 화두인 추상성(abstraction)과 공간성(spatiality)의 비약적인 확대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본 현대미술론 칼럼의 첫 회부터 필자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미술작품의 시각 언어를 통해 읽어보고자 시도했다. 이 명제는 물질적 신체와 분리된 인간 정신의 주체성,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현대조각의 흐름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20세기의 조각가들은 눈에 보이는 지각적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복제하는 장인적 재현을 거부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사유, 사물과 인간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나아가 존재와 세계-내-존재 그 자체의 본질적 문제를 치열하게 탐구해 왔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조각은 더 이상 덩어리(mass)의 예술이 아니라, 존재를 사유하게 만드는 정신적 매개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알렉산더 칼더의 <꽃잎의 아치>: 덩어리의 소멸과 시공간의 역동성
![[크기변환]현대미술론 칼럼 14, 칼더.jpg](https://thepress1.com/data/photo/2606/20260615214418_1e6bfedfd11c06c40cd0fed18c572b9d_0mja.jpg)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꽃잎의 아치(Arc of Petals)>, 1941, 알루미늄 판, 철사, 도료
현대조각이 고정된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추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위대한 전환점의 중심에는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가 있다. 마르셀 뒤샹이 모빌(Mobile)이라 명명한 그의 혁신적인 조각들은 조각이 어떻게 3차원의 물질성을 넘어 4차원의 시간과 우연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시각적 지표이다.
그의 초기 모빌 대표작인 <꽃잎의 아치(Arc of Petals)>(1941)는 전통 조각이 고수해 온 육중한 덩어리를 완전히 소거해 버린 작품이다. 칼더는 깎거나 붙여서 부피를 만드는 대신, 가느다란 철사와 얇은 금속판만을 이용해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선과 면의 구조를 구축했다. 이 작품은 고정된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한 채, 미세한 공기의 흐름(기류)에 반응하며 스스로 움직이고 매 순간 새로운 형태의 궤적을 그려낸다.
여기에 조각의 위대한 혁신성이 있다. 칼더에게 공간은 작품이 놓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과 함께 호흡하고 완성되는 능동적인 매개체다. 철사 끝에 매달린 금속 조각들의 느린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시각화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조각 내부로 끌어들인다.
칼더는 이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조각을 우주의 천체 운동과 생명의 순환 원리로 독해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화된 추상적 선과 움직임으로 대상을 응축해 낸 형이상학적 시도이다. 이로써 칼더는 조각을 물질의 무게감에서 해방시켰으며, 공간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존재의 장으로 확장하는 서막을 열었다.
데이비드 스미스의 <큐비(Cubi)> 연작: 산업 재료와 열린 공간의 구조학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큐비(Cubi)> 연작, 1961~1965, 스테인리스 스틸
칼더가 철사를 통해 고정된 덩어리를 지우고 공간과 호흡하는 선의 전략을 적용했다면, 그의 철사 조각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미국의 조각가 데이비드 스미(David Smith, 1906~1965)는 조각을 외부의 물리적 공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열린 구조로 이행시킨다. 그의 기념비적인 연작인 <큐비(Cubi)>(1961~1965 제작)는 회화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3차원 공간으로 번안해 낸 현대조각의 이정표이다.
스미스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대리석이나 청동 대신, 대량생산의 상징이자 현대 산업 사회의 핵심 재료인 철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대담하게 도입했다. 그는 젊은 시절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승화시켜, 거대한 기하학적 입방체들을 용접하여 공중에 띄우듯 결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큐비>연작의 핵심적인 미학적 가치는 덩어리 자체보다, 형태와 형태 사이에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빈 공간을 조각의 주연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밀어내는 배타적인 덩어리였다면, 스미스의 구조물은 칼더가 열어놓은 추상의 가능성을 이어받아 공간을 품어 안고 관통시키는 개방적 구조를 지닌다.
특히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을 그라인더로 거칠게 연마했는데, 이 무수한 스크래치들은 고정된 색채가 아니라 작품이 설치된 야외의 자연광,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 주변 수목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따라서 관람자가 작품 주위를 이동함에 따라 조각의 표면과 형태들 사이의 공간 관계는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제 조각은 주변 환경과 단절된 고립된 물체가 아니라, 자신을둘러싼 대기와 빛, 그리고 관람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공간적 구조가 된다.
문신의 <우주를 향하여>: 유기적 시메트리와 정신적 공간의 조형화

문신(Moon Shin), <우주를 향하여(Towards the Universe)> 연작, 1970~1990년대, 스테인리스 스틸(혹은 흑단 등),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전시장 내부 소장 및 설치
서구의 현대조각이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개척해 나갈 때, 한국의 현대조각가 문신(文信, 1923~1995)은 동양적 자연관과 생명주의 미술을 바탕으로 추상 공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적 결실인 「우주를 향하여」 연작은 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추상조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준다.
문신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조형 원리는 유기적 시메트리(대칭성)과 반복이다. 그 역시 자연의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곤충의 마디, 식물의 줄기, 인간의 척추, 혹은 세포의 분열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곡선들을 완벽에 가까운 좌우 대칭 구조로 병치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단단한 흑단을 깎고 다듬어 만든 그의 조각은 고도로 세련된 기계적 정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로부터 꿈틀거리며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를 내포한다.
<우주를 향하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문신의 조각은 단순한 물질적 오브제를 넘어선다. 그의 작품에서 대칭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선과 면의 율동은 칼더가 모빌을 통해 구현했던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순환 법칙을 아시아적 명상과 융합하여 시각화한 것이다. 거대하게 솟구치는 곡선의 형태들은 주변 공간을 긴장시키며, 물질로서의 조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우주적 공간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질량과 부피를 가진 3차원의 조각을 통해 무한(infinity)이라는 사유의 장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문신의 조각은 아시아의 명상적 사유와 서양의 추상 조형이 만나는 한국 현대조각사의 주요한 기점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역사, 존재를 사유하는 장(場)
이처럼 20세기 작가들이 감행한 파격적인 시공간적 실험들은 미술비평과 이론의 영역에서도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1941~)는 자신의 『현대조각의 흐름』을 통해 현대조각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였다. 현대조각이 더 이상 기념비라는 전통적인 미학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며, 좌대를 상실한 채 풍경도 아니고 건축도 아닌' 부정(negation)의 논리가 증명되기 시작 했다. 물론, 그에게 기호학적 대방형 논리는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건축, 풍경, 장소,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영토를 확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더와 스미스 그리고 문신의 실험들은 조각이 확장된 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미술사적 필연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결국 현대조각의 역사는 시각적 형태(form)의 변천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의 정복이자 확장사(史)이다. 20세기의 조각가들은 단단하고 고정된 물질적 대상에서 출발했으나, 그 물질성을 해체하거나 변형함으로써 공간과 신체적 경험 그리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미의 영역을 넓혀왔다. 알렉산더 칼더가 고정된 덩어리를 지우고 시간과 기류를 대입해 움직이는 시공간을 창조했고, 데이비드 스미스가 산업적 재료를 매개로 주변 환경과 호흡하는 구조적 개방 공간을 실험했으며, 문신이 대칭과 반복의 미학을 통해 무한한 우주적 정신 공간을 조형화했듯이, 이제 현대조각은 더 이상 인간과 분리된 차가운 사물의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예술이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드는 철학적 매체이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이나 거대한 도시의 광장, 혹은 광활한 자연 속에 놓인 현대조각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은 박제된 하나의 사물을 수동적으로 관조하는 행위가 아니다. 조각적 에너지와 그 조각이 재정의한 물리적·정신적 공간 속으로 능동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지금, 여기(Hic et Nunc)' 존재하는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인 것이다. 조각이 열어젖힌 그 추상의 장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물질을 초월하여 존재의 장으로 나아간 현대조각의 영토 확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정립한 고전적 예술론으로 완결된다. 과거의 전통 조각이 돌이나 청동이라는 가공되지 않은 질료(Hyle)에 인체의 비례나 신화적 서사라는 고정된 형상(Morphe)을 부여하는 덩어리(Mass)의 예술이었다면, 현대 조각가들은 철과 스틸을 넘어 공기, 기류,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까지도 새로운 차원의 질료로 선택했다. 육중한 물질성은 지워졌으나 그들이 추구한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규칙을 밝히고 우주의 순환 원리라는 새로운 시대의 형상(Morphe)을 구현해 낸 것이다. 물질적 사물을 넘어 관조자에게 존재론적 성찰을 선사하는 이 궁극의 목적은, 예술을 통해 사물의 보편적 본질과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적 통찰을 다시 숙고하게 한다. 현대조각은 질료의 한계를 끊임없이 초월하면서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드는 영원한 '형상의 장'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유를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