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아르프와 헨리 무어, 그리고 최만린이 물질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유기적 생명력을 발견해 냈다면, 20세기 초반 또 다른 한 축에서는 모더니즘 조각을 둘러싼 외부 세계의 시공간을 통째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전 칼럼의 조각가들이 공간과 생명의 순환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도시의 소음, 자동차의 질주, 과학기술이 가져온 거친 에너지 속으로 조각을 던져 넣는다. 이제 조각가들은 전통적인 덩어리(Mass)의 외벽을 칼로 찌르듯 해체하여 공간을 절개하고, 그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3차원 공간 속에 고착되어 있던 조각에 시간이라는 4차원의 차원을 첨가하려는 인식론적 도발이었다.
근대 철학에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통해 사유하는 주체성을 선언했듯, 이 시기 조각가들 역시 눈앞의 대상을 수동적으로 재현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세계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조각이란 멈춰 선 사물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공간을 능동적으로 쪼개고 변형시킴으로써 내지르는 격렬한 존재 증명의 선언이었다. 고정된 대상(세계)을 의심하고, 예술가라는 사유하는 주체가 조각적 실천을 통해 세계를 새로이 확립하는 거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여인의 두상 (Head of a Woman / Tête de femme)>, 1909, 청동, 41.3 x 26 x 26.6 cm, MoMA,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입체주의 조각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대상을 수많은 면(Facet)으로 분절하여 덩어리 내부에 음영과 외부 공간을 끌어들인 조형 언어를 보여준 작품이다)
1.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두상> (1909) : 덩어리를 쪼개어 외부 공간을 소환하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통해 평면의 원근법을 해체했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그는 입체주의(Cubism)의 칼날을 자연스럽게 3차원의 조각으로 확장했다. 1909년 제작된 <여인의 두상(Head of a Woman)>(도판 1)은 세기말의 전통적 조각 문법이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균열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연인의 얼굴을 매끄럽고 유기적인 볼륨으로 다듬는 대신, 마치 광산에서 막 채굴한 원석처럼 수많은 면(Facet)으로 잘게 쪼개어 놓았다. 이마와 뺨, 코의 구조는 해부학적 규칙을 잃고 난해하게 잘려 나간 면들의 집합체로 재조합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조형적 문법은 면과 면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음영/밝고 어둠이다. 전시장 내부의 빛이 이 조각에 부딪힐 때, 움푹 팬 면들은 깊은 어둠을 머금고 튀어나온 면들은 빛을 반사한다. 이 강렬한 명암의 대비 속에서 고정되어 있던 단단한 양감은 시각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더 이상 고정된 하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며, 관객의 시선이 조각의 굴곡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형태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피카소는 입체 다면체로 분절된 틈새를 통해 조각 내부로 외부의 빛과 공기를 침투시켰다.
이러한 분절은 르네상스 이래 조각이 고수해 온 유일한 진실로서의 고정된 시점을 완전히 해체하는 행위였다. 조각의 표면은 더 이상 내부의 살을 감싸는 피부가 아니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빛의 에너지를 붙잡아두는 다공성(Porous)의 막으로 전치된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은 주위 환경을 밀어내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법을 제안한다. 피카소는 조각의 겉표면을 쪼개어 그 틈새로 외부의 빛과 공간을 안으로 강렬하게 소환해 낸 것이다. 이는 조각이 더 이상 닫힌 덩어리가 아님을 선언한 첫 번째 신호탄이었다.
2.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 (1913) : 고정된 형태를 지우고 순수한 속도를 새기다

움베르토 보초니 (Umberto Boccioni),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 1913(청동 주조: 1931), 청동, 111.2 x 88.5 x 40 cm, MoMA, ( 미래주의 미학의 정점. 돌진하는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지워버리고, 주변 공기와의 마찰과 역동적인 속도의 궤적을 유선형의 불꽃 형태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피카소가 공간을 절개하는 구조적 기초를 놓았다면,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의 기수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 1882~1916)는 그 절개된 공간 사이에 ‘시간’과 ‘속도’의 궤적을 가치 있게 채워 넣었다. 1913년 작<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은 기계 문명의 역동성에 매료된 미래주의 미학의 최고 정점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은 앞으로 힘차게 걸어나가는 인간의 신체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근육이나 뼈가 아니다. 보초니는 속도 때문에 뒤로 밀려나고 흩어지는 근육의 움직임, 즉 기류(氣流)와 에너지를 조각의 표면에 새겼다. 그 결과 형태는 불꽃이나 물결처럼 격렬하게 소용돌이친다.
보초니는 대상의 단단한 피부, 즉 윤곽선을 과감히 지워버렸다. 물체는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융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각이 사방으로 거칠게 뻗어 나간 날개 같은 돌기들은 신체가 허공을 가를 때 발생하는 물리적인 마찰과 저항의 궤적이다. 보초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연속성'을 단 하나의 청동 덩어리 안에 압축하여 박동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 앞의 관객은 멈춰 선 조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뚫고 영원히 전진하는 순수한 운동 에너지 자체를 대면하게 된다.
보초니는 물질을 정적인 존재로 규정했던 뉴턴적 세계관에 맞서 물체와 공간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상호 삼투하는 아인슈타인적 세계관을 조각화했다. 조각의 표면에서 뻗어 나오는 유선형의 날개들은 공간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물질화되어 엉겨 붙은 흔적이다. 다리와 몸통의 경계면들은 마치 칼로 허공을 가르듯 날카롭게 뻗어 나와 주변 공간을 찔러댄다. 조각이 공간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 질주하면서 주변 공간을 격렬하게 변형시키고 있다는 시공간의 압축. 보초니는 조각의 닫힌 문을 대대적으로 개방하여 주변 환경 속으로 녹여냈다.
3. 송영수, <효(曉)> (1958) : 전후(戰後)의 깊은 폐허 위에서 철(鐵)의 시학을 쏘아 올리다

송영수, <효(曉, Dawn)>, 1958, 철, 용접, 136 x 20 x 26 cm, 유족 소장, ( 한국 현대 철조(鐵彫)의 서막을 연 마스터피스. 전후의 폐허 위에서 날카로운 철선과 용접 흔적을 통해 비극적 실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수직으로 상승하는 선을 통해 새벽(曉)의 희망을 노래한 철의 시학이다)
서구에서 피카소와 보초니가 공간을 열고 속도를 새기는 모더니즘의 혁명을 감행한 지 수십 년이 흐른 후, 대한민국은 6·25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폐허를 맞이했다. 이전 칼럼에서 최만린이 청동의 묵직한 덩어리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했다면, 동시대의 개척자 송영수(1930~1970)는 사방에 널린 전쟁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조형 언어를 건져 올렸다. 그는 195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동선(銅線)과 철판을 용접하는 '철조(鐵彫)'를 시도하며 한국 현대조각의 서막을 열었다.
1958년 작<효(曉, 새벽)>는 그의 철조 예술이 도달한 서정적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과거의 육중한 덩어리는 완전히 증발했다. 불로 달구어 두드린 철판과 날카로운 철선들이 가냘프게 얽히며 위를 향해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선적 구조를 취한다.
피카소가 면을 쪼개고 보초니가 속도를 붙였다면, 송영수는 조각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효>의 몸체는 텅 비어 있어서, 작품 너머의 배경과 공기가 그대로 투과된다.
송영수가 구사한 철선들은 더 이상 형태를 가두는 경계선이 아니라, 텅 빈 무(無)의 공간 속에 실존의 뼈대를 세우는 공간 드로잉이다. 불꽃으로 지져대며 이은 거친 접합점들은 상처 입은 시대를 통과한 작가의 고독한 호흡이자 울부짖음이다. 물질로서의 철은 차갑고 무겁지만, 송영수의 손을 거친 철은 가냘픈 신경망이 되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정신적 고뇌를 드러낸다.
이것은 서구의 철조 조각이 보여준 차가운 기계 미학이나 구조적 실험과는 궤를 달리한다. 송영수의 철조는 전쟁의 파편이라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참혹한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숭고함에 도달한다. 그가 허공에 그어 내린 선들은 물질의 부재를 증명하는 동시에, 그 비어 있음(虛)을 통해 전후 한국인들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하는 시적 울림으로 기능한다. 용접기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거칠고 투박한 철의 흉터들은 전쟁 직후 한국인들이 겪었던 삶의 아픔과 파편화된 실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 가냘픈 철선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올라가는 형태는, 기어이 새벽(曉)을 맞이하겠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숭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차가운 금속을 빌려 가장 뜨거운 영혼의 울림을 표현한, 이른바 철의 시학이다.
모더니즘 조각의 공간과 물질을 지배한 거장들의 유산
장 아르프, 헨리 무어, 최만린이 추구했던 유기적 조각이 물질의 내부에서 밖으로 밀고 나오는 생명의 잉태였다면, 피카소와 보초니 그리고 송영수가 걸어간 길은 물질의 외벽을 부수고 공간과 속도를 안으로 받아들인 시공간의 확장이었다.
유기적 조각이 대지의 중력을 받아들이며 안으로 응축되는 생명의 신비를 노래했다면,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그리고 한국의 선구적 철조는 그 중력을 거스르고 시공간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이탈과 해방의 미학이었다. 이 두 거대한 흐름은 현대 조각이 더 이상 고정된 물질의 노예가 아님을 선언한 양대 축이다.
피카소는 전통적 양감을 해체하여 조각 내부에 비어 있는 공간을 허락했고, 보초니는 형태의 윤곽을 지워버림으로써 조각에 시간의 궤적을 부여했다. 그리고 송영수는 이 서구 현대조각의 전위적 언어를 전쟁의 폐허라는 한국적 맥락 안으로 주체적으로 번역해 내어, 차가운 폐철을 가장 뜨거운 영혼의 시로 응수 했다.
그들 모두는 물질에 예속되기를 거부하고, 공간을 절개하여 자신만의 속도와 시학을 새겨 넣은 위대한 개척자들이었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간 이들이 고정된 세계를 의심하고 시공간을 능동적으로 변형시켰을 때, 조각은 비로소 사물이 아닌 주체의 격렬한 존재 증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현대미술의 열린 형태들, 즉 3차원의 제약을 넘어 미술관을 뛰쳐나와 도시와 환경 속에 호흡하는 설치미술들은 모두 이들이 주체적으로 쪼개어 놓은 조각의 틈새 그리고 그곳에 첨가한 4차원의 시공간에서 흘러나온 눈부신 유산들이다.

철학박사 김승호(동아대학교 교수)
장 아르프와 헨리 무어, 그리고 최만린이 물질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유기적 생명력을 발견해 냈다면, 20세기 초반 또 다른 한 축에서는 모더니즘 조각을 둘러싼 외부 세계의 시공간을 통째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전 칼럼의 조각가들이 공간과 생명의 순환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도시의 소음, 자동차의 질주, 과학기술이 가져온 거친 에너지 속으로 조각을 던져 넣는다. 이제 조각가들은 전통적인 덩어리(Mass)의 외벽을 칼로 찌르듯 해체하여 공간을 절개하고, 그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3차원 공간 속에 고착되어 있던 조각에 시간이라는 4차원의 차원을 첨가하려는 인식론적 도발이었다.
근대 철학에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통해 사유하는 주체성을 선언했듯, 이 시기 조각가들 역시 눈앞의 대상을 수동적으로 재현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세계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조각이란 멈춰 선 사물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공간을 능동적으로 쪼개고 변형시킴으로써 내지르는 격렬한 존재 증명의 선언이었다. 고정된 대상(세계)을 의심하고, 예술가라는 사유하는 주체가 조각적 실천을 통해 세계를 새로이 확립하는 거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통해 평면의 원근법을 해체했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그는 입체주의(Cubism)의 칼날을 자연스럽게 3차원의 조각으로 확장했다. 1909년 제작된 <여인의 두상(Head of a Woman)>(도판 1)은 세기말의 전통적 조각 문법이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균열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연인의 얼굴을 매끄럽고 유기적인 볼륨으로 다듬는 대신, 마치 광산에서 막 채굴한 원석처럼 수많은 면(Facet)으로 잘게 쪼개어 놓았다. 이마와 뺨, 코의 구조는 해부학적 규칙을 잃고 난해하게 잘려 나간 면들의 집합체로 재조합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조형적 문법은 면과 면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음영/밝고 어둠이다. 전시장 내부의 빛이 이 조각에 부딪힐 때, 움푹 팬 면들은 깊은 어둠을 머금고 튀어나온 면들은 빛을 반사한다. 이 강렬한 명암의 대비 속에서 고정되어 있던 단단한 양감은 시각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더 이상 고정된 하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며, 관객의 시선이 조각의 굴곡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형태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피카소는 입체 다면체로 분절된 틈새를 통해 조각 내부로 외부의 빛과 공기를 침투시켰다.
이러한 분절은 르네상스 이래 조각이 고수해 온 유일한 진실로서의 고정된 시점을 완전히 해체하는 행위였다. 조각의 표면은 더 이상 내부의 살을 감싸는 피부가 아니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빛의 에너지를 붙잡아두는 다공성(Porous)의 막으로 전치된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은 주위 환경을 밀어내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법을 제안한다. 피카소는 조각의 겉표면을 쪼개어 그 틈새로 외부의 빛과 공간을 안으로 강렬하게 소환해 낸 것이다. 이는 조각이 더 이상 닫힌 덩어리가 아님을 선언한 첫 번째 신호탄이었다.
피카소가 공간을 절개하는 구조적 기초를 놓았다면,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의 기수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 1882~1916)는 그 절개된 공간 사이에 ‘시간’과 ‘속도’의 궤적을 가치 있게 채워 넣었다. 1913년 작<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은 기계 문명의 역동성에 매료된 미래주의 미학의 최고 정점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은 앞으로 힘차게 걸어나가는 인간의 신체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근육이나 뼈가 아니다. 보초니는 속도 때문에 뒤로 밀려나고 흩어지는 근육의 움직임, 즉 기류(氣流)와 에너지를 조각의 표면에 새겼다. 그 결과 형태는 불꽃이나 물결처럼 격렬하게 소용돌이친다.
보초니는 대상의 단단한 피부, 즉 윤곽선을 과감히 지워버렸다. 물체는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융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각이 사방으로 거칠게 뻗어 나간 날개 같은 돌기들은 신체가 허공을 가를 때 발생하는 물리적인 마찰과 저항의 궤적이다. 보초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연속성'을 단 하나의 청동 덩어리 안에 압축하여 박동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 앞의 관객은 멈춰 선 조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뚫고 영원히 전진하는 순수한 운동 에너지 자체를 대면하게 된다.
보초니는 물질을 정적인 존재로 규정했던 뉴턴적 세계관에 맞서 물체와 공간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상호 삼투하는 아인슈타인적 세계관을 조각화했다. 조각의 표면에서 뻗어 나오는 유선형의 날개들은 공간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물질화되어 엉겨 붙은 흔적이다. 다리와 몸통의 경계면들은 마치 칼로 허공을 가르듯 날카롭게 뻗어 나와 주변 공간을 찔러댄다. 조각이 공간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 질주하면서 주변 공간을 격렬하게 변형시키고 있다는 시공간의 압축. 보초니는 조각의 닫힌 문을 대대적으로 개방하여 주변 환경 속으로 녹여냈다.
서구에서 피카소와 보초니가 공간을 열고 속도를 새기는 모더니즘의 혁명을 감행한 지 수십 년이 흐른 후, 대한민국은 6·25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폐허를 맞이했다. 이전 칼럼에서 최만린이 청동의 묵직한 덩어리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했다면, 동시대의 개척자 송영수(1930~1970)는 사방에 널린 전쟁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조형 언어를 건져 올렸다. 그는 195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동선(銅線)과 철판을 용접하는 '철조(鐵彫)'를 시도하며 한국 현대조각의 서막을 열었다.
1958년 작<효(曉, 새벽)>는 그의 철조 예술이 도달한 서정적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과거의 육중한 덩어리는 완전히 증발했다. 불로 달구어 두드린 철판과 날카로운 철선들이 가냘프게 얽히며 위를 향해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선적 구조를 취한다.
피카소가 면을 쪼개고 보초니가 속도를 붙였다면, 송영수는 조각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효>의 몸체는 텅 비어 있어서, 작품 너머의 배경과 공기가 그대로 투과된다.
송영수가 구사한 철선들은 더 이상 형태를 가두는 경계선이 아니라, 텅 빈 무(無)의 공간 속에 실존의 뼈대를 세우는 공간 드로잉이다. 불꽃으로 지져대며 이은 거친 접합점들은 상처 입은 시대를 통과한 작가의 고독한 호흡이자 울부짖음이다. 물질로서의 철은 차갑고 무겁지만, 송영수의 손을 거친 철은 가냘픈 신경망이 되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정신적 고뇌를 드러낸다.
이것은 서구의 철조 조각이 보여준 차가운 기계 미학이나 구조적 실험과는 궤를 달리한다. 송영수의 철조는 전쟁의 파편이라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참혹한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숭고함에 도달한다. 그가 허공에 그어 내린 선들은 물질의 부재를 증명하는 동시에, 그 비어 있음(虛)을 통해 전후 한국인들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하는 시적 울림으로 기능한다. 용접기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거칠고 투박한 철의 흉터들은 전쟁 직후 한국인들이 겪었던 삶의 아픔과 파편화된 실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 가냘픈 철선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올라가는 형태는, 기어이 새벽(曉)을 맞이하겠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숭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차가운 금속을 빌려 가장 뜨거운 영혼의 울림을 표현한, 이른바 철의 시학이다.
장 아르프, 헨리 무어, 최만린이 추구했던 유기적 조각이 물질의 내부에서 밖으로 밀고 나오는 생명의 잉태였다면, 피카소와 보초니 그리고 송영수가 걸어간 길은 물질의 외벽을 부수고 공간과 속도를 안으로 받아들인 시공간의 확장이었다.
유기적 조각이 대지의 중력을 받아들이며 안으로 응축되는 생명의 신비를 노래했다면,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그리고 한국의 선구적 철조는 그 중력을 거스르고 시공간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이탈과 해방의 미학이었다. 이 두 거대한 흐름은 현대 조각이 더 이상 고정된 물질의 노예가 아님을 선언한 양대 축이다.
피카소는 전통적 양감을 해체하여 조각 내부에 비어 있는 공간을 허락했고, 보초니는 형태의 윤곽을 지워버림으로써 조각에 시간의 궤적을 부여했다. 그리고 송영수는 이 서구 현대조각의 전위적 언어를 전쟁의 폐허라는 한국적 맥락 안으로 주체적으로 번역해 내어, 차가운 폐철을 가장 뜨거운 영혼의 시로 응수 했다.
그들 모두는 물질에 예속되기를 거부하고, 공간을 절개하여 자신만의 속도와 시학을 새겨 넣은 위대한 개척자들이었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간 이들이 고정된 세계를 의심하고 시공간을 능동적으로 변형시켰을 때, 조각은 비로소 사물이 아닌 주체의 격렬한 존재 증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현대미술의 열린 형태들, 즉 3차원의 제약을 넘어 미술관을 뛰쳐나와 도시와 환경 속에 호흡하는 설치미술들은 모두 이들이 주체적으로 쪼개어 놓은 조각의 틈새 그리고 그곳에 첨가한 4차원의 시공간에서 흘러나온 눈부신 유산들이다.

